▲의사의 지시로 간호사가 작성해 준 이영복 씨의 ‘진료 후 절차 안내문’에는 본관 1층에서 당일 입원 수속을 하라고 되어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그런데 이씨가 "보호자가 없다"고 말하니 입원수속 창구 직원이 원무과 사무실로 가서 담당 직원과 직접 상담하라고 하였다. 원무과 담당 직원은 독거 세대주인 이씨에게 "보호자가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씨가 "본인은 독거 세대주로 보호자가 없다"는 사정과 "그동안 다른 병원에서 진료비를 연체한 적도 없고, 다른 병원에서 보호자 없이 입원한 적도 있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담당 직원은 "다른 병원은 어떤지 몰라도 저희 병원은 안 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씨는 "보호자가 없는 장애인이나 독거인은 중병이 걸려도 입원을 못하느냐?"고 항의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씨가 112에 신고해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양쪽의 진술을 들은 경찰관은 "병원에는 입원 절차가 있고, 환자는 그 절차에 따르는 것이 맞다"면서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 보호자 한 명을 지정해 입원약정서 작성 후 입원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해당 대학병원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돌아왔고, 큰 좌절감과 분노 때문에 고시원 옥상에서 자살까지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사는 가난한 환자'에 대한 차별 행위를 세상에 알리고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인권 변호사, 정당 관계자, 정부기관 공무원 등을 찾아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는 지난 6월 22일에는 환자단체연합회가 개최한 제18회 '환자샤우팅카페'에도 참석했다.
"내가 한국 사람인데... 아프리카도 아니고 저 안드로메다까지 가서, 외계인 앞에서 한국말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죽하면 제가 뛰어내리려고 했겠어요." '혼자 사는 가난한 환자'는 입원할 수 없다?
play
▲ 이영복 씨(53세)가 지난 6월 22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개최한 제18회 ‘환자shouting카페’에 참석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한 자신의 인권침해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후 언론엔 이영복씨 사건이 보도됐다. 지난 7월 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해당 대학병원 관계자는 "보호자나 연대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한 사실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6월 20일 환자단체연합회은 해당 대학병원 원무과 담당 직원과의 통화를 통해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영복씨의 입원을 거부한 사실을 확인했다. 대학병원 원무과 담당 직원은 입원 시 보호자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보호자가 있어야 입원 보증인을 세울 수 있고 검사·수술 등을 할 때 동의를 받으며, 간병인이 필요할 때 간병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에는 132만8713명의 기초생활보장수급 의료급여 환자가 있다. 이들은 극빈층에 해당하여 국가로부터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의 혜택을 받고 있고, 상당수는 독거 세대주다. 기초생활보장수급 의료급여 환자들은 돈이 없어서 입원보증인을 세우거나 간병인을 두기 어렵다. 만일 독거 세대주라면 검사·수술 시 필요한 보호자도 없다. 결국 병원이 보호자 없는 가난한 독거 기초생활보장수급 의료급여 환자의 입원을 거부할 경우, 이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국가는 가난한 환자들이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의 건강보험 적용 의료비를 면제해 주는 '의료급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중한 질병 등에 의해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는 가정에 총 2회까지 각각 300만 원씩 지원하는 '긴급의료비지원제도'도 운영 중이다. 병원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회사업실'에서는 복지단체를 통해 치료비 지원도 하고 있다. 국가와 복지단체에서 운영 중인 이러한 각종 의료복지 제도가 있으므로 가난한 환자들도 치료비를 못 낼 가능성 때문에 입원 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검사동의서나 수술동의서 작성은 환자에게 검사나 수술이 필요한 이유, 예상되는 후유증 등 검사나 수술에 관련한 제반사항을 환자나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한 후 그 검사나 수술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절차이다. 이는 병원에서 검사나 수술에 따라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후 분쟁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임의로 작성하는 것이고, 검사나 수술 시 검사동의서나 수술동의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관련 법령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검사나 수술 시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입원을 거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만, 생명과 직결된 위험한 수술 시에는 병원이 사후 의료사고 책임 소재 문제로 수술을 꺼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관할 지방자치단체 시장·군수·구청장이 보호자 역할을 대신 해 주는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혼자 사는 가난한 환자'도 병원에 입원해 차별 없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차원의 대책 필요해 핵가족화와 저출산·고령화로 대표되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누구나 '혼자 사는 가난한 환자'가 될 수 있다. '혼자 사는 가난한 환자'가 보호자와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아파도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2007년에 일부 병원에서 독거노인과 같이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 환자보호자의 '수술동의서' 작성 요구로 수술이 지연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여 보건복지부는 이 경우 환자보호자의 '수술동의서' 제출을 강요하지 말고 환자에게 직접 '수술동의서'를 받도록 하는 행정지도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대학병원처럼 현재까지도 환자보호자의 '수술동의서'를 요구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할 보건소를 통해 전국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대상으로 '보호자' 또는 '입원 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후 적극적인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