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짜기베를 짜는 풍경들
전새날
하루에 두 번뿐인 삼굿
삼 껍질은 밧줄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이지만 대부분 옷감으로 쓰이는데 7월의 무더위에 불을 때서 삼굿을 하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 삼굿을 시작으로 길쌈은 겨우내 긴긴 밤을 베틀에서 졸아 가며 베를 짜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에 수십 번의 손길이 가야 삼베 한 필이 만들어진다.
삼굿은 삼나무를 차곡차곡 쌓아서 뜨거운 김으로 쪄 내는 일이다. 장골 키보다 큰 삼나무를 베어 내서 곁가지를 쳐 내고 한 다발씩 묶어 가마에서 찌는데 그 방법이 참 감탄스럽다. 삼굿 터는 화덕과 삼 가마로 나뉜다. 화덕은 수증기를 만드는 것이고, 삼 가마는 그 수증기로 삼을 찌는 것이다. 삼 가마는 바닥에 가로로 통나무를 깔고 그 위에 다발로 묶인 삼나무를 쌓아 만든다. 가장자리 따라 통나무를 세워 삼나무가 많이 쌓이게 유도하는데, 덕석이나 솔가지 등으로 그 위를 덮고 마지막으로는 흙을 씌워서 김이 새 나가지 않도록 밀봉한다.
삼굿이 잘되려면 화덕이 중요하다. 화덕에서 불의 열기를 수증기로 만들어 삼 가마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화덕은 돌을 바닥에 깐 위에 장작을 쌓아 만든다. 여기에 불을 지피는데, 이 화덕 관리는 마을에서 가장 경륜이 있는 어른이 맡는다. 자칫 잘못하다 삼이 설익으면 하루에 겨우 두 번밖에 못 하는 삼굿을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화덕의 장작불이 타는 동안 가장자리에 돌을 쌓고 나서 흙으로 덮어 올라가다가 화구의 정수리만 남기고 흙으로 다 덮는 순간 화덕 안으로 물을 쏟아 붇는다. 흙으로 쌓은 화덕의 옆구리 몇 군데에도 삽이나 괭이로 흙집을 내고 물을 쏟아 부으면 뜨거운 돌들에 닿은 물이 수증기로 변해 삼 가마로 밀려 들어간다.
화덕이 삼 가마보다 약간 낮아야 하고 김이 이동하는 통로가 서넛 잘 뚫려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장작의 양과 돌 쌓기, 물을 부을 때와 위치, 물의 양은 동네 어른의 오랜 경험과 정교한 판단에 따른다. 이제부터 삼베옷이 탄생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펼쳐진다. 동네 아이들은 '와, 와' 하며 몰려들어 심부름도 하고 놀이도 한다.
지난한 삼 삼기와 삼 날기쪄낸 삼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일에서부터 벗긴 겉껍질에서 삼톱으로 속껍질 빼내기, 바짝 말리기, 말린 삼 뭉치를 다시 물에 불려 삼 째기, 그리고 오른쪽 무르팍이 시뻘겋게 피가 배어 날 정도로 삼 가닥을 문질러 대는 삼 삼기가 기다리고 있다.
삼 삼기는 삼 뭉치를 삼뚝가지(정방형의 묵직한 나무토막 위에 가는 나뭇가지를 세워서 끝에 홈을 낸 것)에 걸어 놓고 한 올씩 빼서 오른 무릎을 반쯤 세워 허벅지 쪽에 삼 두 올을 삼의 머리 쪽과 꼬리 쪽을 나란히 놓고 침을 뱉어가며 잇는 작업을 말한다. 머리 쪽을 두 갈래로 가르고 다른 올의 꼬리 쪽을 그 사이에 넣어 침 바른 손바닥으로 너댓 번 비벼 올리면 두 올이 이어진다.
겨릅대는 삼나무 껍질을 벗긴 양에 비례해서 생기는데, 품삯 대신 자기가 벗긴 만큼의 겨릅대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동네 코흘리개 애들부터 노인까지 달려들어 벗기게 된다. 겨릅대는 잠자리채는 물론 땔감으로도 쓰고 집 지을 때 외얽기(흙벽을 만들 때 벽이 될 가운데에 얽어매는 외가지. 흙이 양쪽으로 붙을 때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로도 쓴다. 지붕에 이엉을 일 때 먼저 겨릅대를 엮어 깔기도 한다. 한자로는 '마골(麻骨)'이라 하는 겨릅대는 속이 비어 있다 보니 단열은 물론 습도 조절까지 한다.
이런 기능들에 관심이 없는 애들은 겨릅대를 엉뚱한 용도로 쓰다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겨릅대를 분질러서 비눗물에 꽂았다가 입으로 불어 대는 비눗방울 놀이가 첫 번째라면, 장마 때 곪아 빠진 호박을 주워다가 겨릅대를 4개 꽂아 다리를 만들고는 귀나 주둥이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돼지나 소가 되는 동물 놀이가 두 번째다.
삼 삼기가 끝이 아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과정은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 설명을 해도 직접 해 보지 않는 이상 이해하기 힘든데, 삼 날기와 베 매기 등이다. 치자 물을 들이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다. 이런 과정은 추석도 쇠고 농사가 끝난 음력 11월부터 시작해서 계속되다가 다음 해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인 음력 2월에 베 짜기로 마무리된다.
굳이 가장 중요한 단계를 짚으라면 '계추리 바래기'라고 할 수 있다. 계추리는 삼의 속껍질을 말하는데, 쪄 낸 삼 껍질에서 겉껍질을 벗겨 내고 남은 속껍질을 햇볕에 널어 말리는 걸 바래기라고 한다. 이때 암갈색의 삼 껍질이 담황색으로 바뀌는 표백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색도 고와지고 삼의 올도 질겨진다. 한 주 정도 걸린다.
중국산 인조 삼베, 조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