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오르는 계단인 ‘코르도나타’. 미켈란젤로가 원근감을 없애기 위해 올라갈수록 폭을 넓히도록 설계하였다.
장호철
카피톨리노 언덕은 그라쿠스(Gracchus) 형제, 티베리우스(Tiberius, B.C 163~B.C 132)와 가이우스(Gaius, B.C 154~B.C 121)의 개혁이 좌절된 곳이다. 드라마틱 로마의 또 다른 주역인 그라쿠스 형제는 각각 호민관이 되어 로마 공화정과 군대의 핵심인 자영농의 붕괴를 막기 위해 농지 개혁을 추진하다가 개혁에 반대하는 원로원의 귀족들에게 제거되었다.
호민관 티베리우스는 신성한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해되었고, 그를 지지한 수백 명의 민중들과 함께 티베르강에 버려졌다. 아우 가이우스도 11년 후, 원로원에 의해 '공화국의 적'으로 규정되어 진압될 때 자살해 포로 로마노에 효수되었고 몸뚱이는 티베르 강에 던져졌다.
형제가 죽은 뒤, 원로원은 그라쿠스 개혁의 대부분을 무효로 만들고 토지개혁도 무산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의 성채는 높고 완강한 것, 로마의 귀족들은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은 기원전 59년 부의 재분배가 시급한 문제임을 확인한 카이사르의 '농지법'으로 뒤늦게 이루어졌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1547년, 미켈란젤로의 구상에 따라 12세기께 세워진 세나토리오(Senatorio) 궁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원로원 의원들의 집회 장소였던 세나토리오 궁은 현재 로마 시청사로 쓰이고 있고 좌우의 건물은 카피톨리노 박물관과 팔라초 콘세르바토리(미술관)다.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청동 기마상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유서야 깊지만 로마에서 가장 작은 이 광장을 설계한 이는 미켈란젤로다. 그는 투시법을 이용해서 좌우 건물을 서로 비스듬히 배치함으로써 광장이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천재적 발상은 캄피돌리노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인 '코르도나타(cordonata)'라 불리는 완만한 경사의 계단에서 빛난다.
코르도나타 계단은 길이가 꽤 되지만 아래에서 보기엔 실제보다 짧아 보인다. 원래 올려다보는 계단은 원근감 때문에 윗부분이 좁아져 마치 마름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계단은 원근감을 없애기 위해 올라갈수록 폭을 넓히도록 설계하였고, 그로 인한 착시현상 때문에 계단의 길이가 짧아 보이게 된 것이다.
로맨틱 로마와 <로마의 휴일> 그 흥망성쇠는 물론이고, 로마 사에 명멸해 간 인간의 삶과 투쟁의 서사가 드라마틱하기만 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현실적이기보다는 신비롭고 달콤하며 환상적인 데가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로맨틱(romantic)함'의 근원도 로마였던 것이다.
대제국 로마는 한 시대의 표준이고 준거였다. 로마제국이 팽창하면서 유럽 곳곳에 라틴어의 방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로마인이 퍼뜨린 말이라고 하여 이를 통틀어 '로망스(romans)'라 불렀다. 이 방언들이 오늘날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가 되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종교적·학술적·정치적·철학적 의미를 전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면 이 로망스 방언들은 주로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이야기를 담는 데 쓰였다. 거의 대부분 남녀 간의 애틋한 연애 이야기가 섞여 있는 이 방언으로 된 이야기는 뒤에 '로망스(romances)'로 불리게 된다.
어군(語群)을 뜻하든, 문학의 한 장르이든 간에 로망스는 오늘날 로맨스(romance)와 로맨틱(romantic), 로맨티시즘(romanticism)의 어원이었다는 얘기다. 그것은 더 거칠게 풀면 '로마'로부터 파생된 낱말이니, 로맨틱은 말 그대로 '로마적(的)'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역사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그리고 안토니우스의 연애도 로맨틱한 것이었지만 역시 로맨틱 로마는 20세기 로마에서 찾는 게 훨씬 쉽다. 1950년대에 나온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은 일약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유서 깊은 도시를 '낭만'의 도시로 재창조했던 것이다.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1929~1993)에게 오스카상을 안긴 이 영화는 유럽의 어느 왕국의 공주와 미국인 신문기자(그레고리 펙)와의 러브스토리다. 둘의 애틋한 사랑만큼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로마의 명소들도 새로운 이미지를 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