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오름을 오르다가 내 생애 가장 큰 달팽이와 마주쳤다.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금세 우리 눈 앞에서 사라졌다.
이영섭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 갈 길은 내가 정한다오늘 재미있는 뉴스를 접했다. 노동자의 쉬는 권리를 위해 정부와 경제 5단체가 직접 나서 '일·가정 양립 직장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4대 공동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연차 사유를 묻지 말라든지, 업무 외 시간에는 카카오톡을 보내면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시도는 가상하나, 현실성은 전혀 없는 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을'을 찾아대고, 자신이 '갑'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죄 없는 '을'에게 풀어대려 하는 '꼰대'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의 눈에는 '을'이 휴가를 낸다는 건 본분을 다하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이며, 퇴근했다고 연락이 되지 않는 '을'은 책임감이 없어 관리자로 승진시켜서는 안 되는 무능력자인 게다.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이 세대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조직보다는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세대가 그 자리를 차지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뤄지기 전까지 우리는 이런 불합리함을 견디고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하여 남들보다 나은 경제적·사회적 성취를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꼰대' 문화의 불합리함조차 성공을 위해 이겨내야 할 고난과 역경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 자세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굳이 남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은, 경제적·사회적 성취보다는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우선시 하는 우리와 동류인 분들이라든지,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조차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책임감 없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행을 택했다.
물론 이곳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면 또 다른 꼰대 문화의 영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직장생활 외에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서울과 비교하면,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은 가장 마지막에 선택해도 되는 최후의 선택지였다. 내 선택은 이곳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많이 접한다. 반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치열한 경쟁에서의 도피자'라고 폄하하는 분들도 그만큼 많이 만나봤다. 둘 다 자신들의 관점에서는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내 삶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경쟁이든, 도피든 혹은 합리화든 뭐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