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현우 국악 교육 활동가
김영숙
1992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라씨는 단과대학 풍물패에 가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한 일이다.
"광성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수학 선생님이 풍물패를 만들었어요.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입시 공부로 멀리 해야 했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보니 이른바 운동권이 풍물을 많이 하더라고요. 부모님께 죄짓는 것 같아서 고민했어요. 그러다 '집회는 나가지 않고 풍물만 하겠다'고 선배들한테 선언하고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반년 쯤 지나니까 세상이 궁금해 제 발로 집회현장에 찾아갔지만요.(웃음)" 풍물을 좋아한 정도가 취미를 넘어 '미친 지경'이었다고 그때의 자신을 표현한 라씨는 당시 부모와 살던 아파트 붙박이 장롱에서 악기를 치다가 경비원한테 혼나기도 했다. 악기를 치다가 그곳에서 잠들기도 했단다. 라씨를 미치게 한 풍물의 매력이 도대체 뭘까.
"대학 때 선후배들이 어울려 당구를 치러 갈 때 저는 안 갔어요. 당구보다 장구가 훨씬 좋습니다. 술 마시고도 혼자서 장구를 쳤고, 다른 풍물동아리 선배들한테 배우기도 했고요. 선배들이 가르쳐주면 장단 하나하나를 모두 익힐 때까지 연습했는데, 그 성취감이 매력이었을까요? 그러면서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전공보다는 풍물에 빠져 있는 아들이 좋아 보일 리 없었겠지만, 라씨의 부모는 아들의 꿈을 응원했다. 그런데 목 디스크 수술을 하고 휴학한 후 풍물을 멀리 했다. 하지만 악기가 계속 떠올랐고 좋아하는 걸 안 하고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과 만남, 우연이지만 필연서른이 넘어 졸업한 라씨는 서울에 있는 풍물교육연구소에서 일하다 인천에 오면서 장애인 교육활동에 주력했다.
"2003년부터 장애인들을 교육했어요. 제가 있던 연구소에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파견을 나가 공연하거나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한번은 장애인 교육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 즈음 제가 '장애인 교육을 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라서 팀원들이 저보고 해보라고 권했죠."시각장애인 대상 수업이었는데, 기자 두세 명이 취재하러 왔다. 기자들은 장애인들에게 동작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라씨는 '자연스럽게 찍고 가지, 모델도 아닌 사람들을 왜 힘들게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기자들이 죄송하다고 말하더라고요. 뙤약볕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수업했어요. 인천에서 오신 분들인데, 이른 아침에 서울에 오느라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진을 한두 번 찍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동물원 우리에 갇힌 것 같았어요. 그 자리에 있던 장애인을 인천에서 수업하다가 만났는데, 그때 속으로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고맙기도 했고,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고 하면서요."왜 그랬는지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전공이 식품영양학인 라씨는 부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선택했다. 장애인들과 만남은 그에게 우연이지만 필연인 것 같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속된 강사들은 전국의 장애인복지관에 파견됐다. 라씨는 인천에 살아 인천에 있는 복지관으로 배정됐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남구에 있는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장애인들이었다. 지금은 복지관 등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국악이나 풍물 교육 요구가 늘어난 것에 비해 강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저도 처음에는 초·중·고교 학생 대상 수업을 많이 했어요. 장애인들과 수업하면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악이나 풍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강사들이 부담스러워하니까, 제가 다른 분야보다는 이쪽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습니다."3년 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예술 강사를 채용해 장애인 국악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에서 장애인 국악예술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라씨 혼자였는데, 올해는 한 명 더 늘었다.
장애인교육을 하며 배우는 게 더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