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안장된 명나라 마지막 궁녀 굴씨. 묘지 안내판 뒤에 있는 묘가 그녀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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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명나라 황실의 궁녀였던 굴씨(屈氏)도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녀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되었을 때 마침 병자호란으로 심양에 인질로 가있던 소현세자를 모시다 그가 귀국할 때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하지만 소현세자 사후 청나라의 환국명령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조선으로 귀화했다. 그녀는 자신의 조국을 멸망시킨 청나라를 증오했다. 또 그녀는 비파를 잘 탔고, 손가락과 휘파람으로 인왕산의 새와 짐승을 불러내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뛰어난 재주로 새와 짐승을 길들이는 방법을 조선에 보급하기도 했다.
굴씨의 이런 재주 때문인지 조선인들의 관심은 남달랐고, 그녀에 대한 여러 글이 남겨져 전해 온다. 하지만 그녀가 비파를 잘 타고 짐승을 다룰 줄 아는 재주에 대한 매력도 있었겠지만 그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 황후를 모셨던 궁녀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조선후기 사대부는 명나라에 대한 짙은 향수와 청나라에 대한 경멸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굴씨의 삶은 정조 24년(1800) 왕명에 따라 의례의 여러 사례를 모아 놓은 <존주휘편>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굴씨는 효종의 북벌계획을 알고 큰 기대를 가졌지만 결국 북벌을 보지 못한 채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리고 그의 묘가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산 65번지에 위치한 까닭은 다음과 같은 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오랑캐는 나의 원수요. 내 생전에 오랑캐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되었지만 행여라도 북벌하러 가는 군대가 있다면 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니 내가 죽거든 서쪽 교외 길가에 묻어주오."이렇게 수많은 궁궐의 여인들이 거쳐 간 이곳도 효종의 뒤를 이은 현종 대에 이르러 자수원을 혁파하고 이곳에 북학(北學)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