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의진 전 회장은 최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 공로를 인정받아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했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 제공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 "인간은 폭력보다 강함을 보여줘"문경 석달리 등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학살의 진실이 드러나는 데 한평생을 바친 이가 채의진 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 회장이었다.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 당시 13살이던 채 전 회장은 형의 시신에 깔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 형과 형수, 누나 등 9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
채 전 회장은 '그날의 학살' 이후 초급대학 야간부를 겨우 졸업하고 영어교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한 학살의 상처와 아픔은 치유될 수 없었다. 1987년 21년간의 교사 생활을 정리한 뒤 서각공예를 하면서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진실 규명에 매달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를 만들고, 국회와 청와대, 국방부, 내무부 등에 수차례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면서 진실 규명이 될 때까지 기르던 머리와 수염을 자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채 전 회장은 범국민위 출범 5주년 행사가 열린 2005년 9월 17년간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그가 머리를 잘랐던 앞뒤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출범했고,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의 진실규명이 결정됐다. 그가 한국전쟁 유족회 고문과 문경유족회 회장,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 유족회 회장,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한평생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에 바친 결과였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지난 6월 15일 채 전 회장을 '제6회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했다(월간 <말> 기자로서 문경 석달리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을 연속보도했던 정희상 <시사인> 기자와 공동 수상). 재단은 "아홉명의 가족을 학살로 읽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사회문제로 제기하고, 법적, 제도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라며 인권상 수상자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채의진 선생은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그 고통을 딛고 진실규명을 위해 온 삶을 거리에서 살며 헌신했습니다.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암울한 역사를 증언한 시대의 증언자, 목격자인 채의진 선생은 끈질긴 투쟁으로 미흡하나마 국가의 사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국가는 채의진, 그리고 '수많은 채의진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짓밟고, 망각 속에 가두려 했습니다. 그러나 학살의 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죽음 같은 고통을 딛고, 끔찍하고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진실'이라는 꺼지지 않는 등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삶 전체를 통해 인간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진실을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