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 근현대사 기념관1층 전시실근현대사 기념관 1층 상설 전시실에는 동학운동부터 4.19혁명까지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을 근현대사의 핵심 정신으로 표현하고있다.
정인곤
- 친일 청산이 좌절되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친일 청산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21세기에 옛날이야기 하느냐고 하기도 합니다.이준식 : "물론 친일 청산문제에 관해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과거사 청산 위원회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또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문제도 다뤄졌지요. 그런데 제가 그런 활동을 해보니까 친일 청산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지더군요.
2014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이 있었습니다. 친일세력의 후손이 정치권력을 잡으니까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그런 사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겁니다. 2002년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이 시작되었는데, 그 기념관에서 친일과 독재가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 교묘하기까지 합니다.
해방 후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으로 관료, 기업인, 언론인 등을 언급하는데 그 사람들이 식민지시대에 일제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이거든요. 산업화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가능했다는 논리는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의 중요한 고리를 끊어버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제가 원래 잠을 잘 자는 사람인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보고서 잠을 못 잤어요. 근현대사 연구자로서,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느낌이었지요. 역사 연구자로 살아왔고 역사 교육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가 역사 왜곡 사건을 겪다보니까 1인 시위도 하게 됐어요. 역사 왜곡과 싸우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하셨던 백산 지청천 장군의 후손이라고 들었습니다. 지청천 장군 묘소도 수유리에 있었지요. 수유리에 여러 추억이 있을 것 같습니다.이준식 : "원래 외할아버지 성함이 지청천이었는데, 독립운동하면서 어머니 성, 이 씨로 바꾸셨어요. 그러다가 해방 후에 다시 지씨 성으로 복원시키셨지요. 제가 1956년생이고 외할아버지가 1957년에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어머님을 통해서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며 자란 거지요. 어머님 또한 독립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외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셨고 그래서 매해 몇 차례씩 수유리 묘소를 찾았습니다. 어머님이 친인척 소집 명령 같은 걸 내리면 다들 모여서 함께 왔었습니다.
그렇지만 초·중·고를 부산에서 다녔기 때문에 수유리 묘소를 찾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벌초하고 계단 보수하고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제가 근현대사기념관장이 된 건 근현대사 연구자인 것과 외할아버지 묘소가 이곳에 있었던 게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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