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4.19묘지북한산 자락에 국립4.19묘지가 있다. 원래는 시내에 조성하려고 했으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새로운 곳을 모색하다가 북한산 자락으로 오게 되었다.
정인곤
북한산 자락 수유리에는 일제 식민지 시기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분들의 묘소가 모여 있다. 동학운동의 지도자였던 손병희 선생부터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이시영 선생, 신익희 선생, 김창숙 선생, 유림 선생, 선상일 선생, 국내에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며 독립운동을 하셨던 여운형 선생과 김병로 선생 등 열여섯 분의 묘소가 있다.
근현대사기념관이 이곳에 지어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망우리 묘역과 효창 묘역도 있지만 수유리 묘역이 남다른 게 무엇인지 박은석 강북문화원 사무국장을 통해 들어봤다.
- 수유리에서 나고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박덕신 수유감리교회 원로목사)은 40여 년 수유리에서 목회를 하셨고요. 수유 지역에서 경험한 것들이 많이 있겠습니다."저는 마을을 지나다니면 아직도 논과 밭이 선하게 보여요. 여기는 외양간 있던 자리, 저기는 초가집이 있던 자리, 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 현대와 과거가 겹쳐 보여요. 학교를 오가는 길에 어르신들이 한복을 입고 나무 그늘에서 긴 담뱃대를 늘어 피우고 있는 모습들도 생각나요. 4·19 민주묘지가 지금은 관리가 잘 되어있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갔을 때는 연못에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을 정도로 소외된 곳이었어요."
- 수유리, 우이동 등지에 애국지사 16위 묘가 있습니다. 손병희 선생이 맨 처음 봉황각 근처에 묻혔고, 그 이후 1940년대 말과 1950년대에는 여운형 선생, 이시영 선생, 신익희 선생, 이명룡 선생이 묻히고 이후 김창숙 선생, 서상일 선생, 유림 선생, 김병로 선생 등이 묻혔고요. 이곳 수유리에 애국지사들의 묘가 모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국립 4·19 민주묘지를 원래는 남산 팔각정 근처에 하려고 했었다가,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나게 됐어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다가 떠오른 게 수유리였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 이미 수유리는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의 상징 같은 곳으로 여겨졌던 거예요.
중요한 묘소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이유를 더 추적해보면 아마도 삼각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삼각산은 정말 장관이지요. 사람이 자연을 바라볼 때 감탄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에서 경외감과 신비감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 삼각산이 이 지역에 사람들을 모이게 했던 것이지 않을까요. 우이동에 있는 수도원 봉황각은, 삼각산 줄기가 쫙 내려와서 둥지를 틀어 기운이 내려앉는 곳, 봉황이 내려앉는 곳이라고 해서 봉황각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천 년 된 도선사, 500년 된 화계사가 이곳에 있는 이유, 한신대와 가르멜수도원 등이 이곳에 있는 이유도, 삼각산의 장엄하고 신비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모르는 삼각산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