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은 강 자체, 둑, 강과 둑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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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욕구'는 강과 닮았다. 내면을 휘젓고 다니며 잠시도 놔두지 않는 생명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로 흐를지 종잡기 힘든 가능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류는 이성적 근거들을 주워 모아 둑을 쌓아올렸다. 둑의 구조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ethos 즉 내면화된 사회 규범을 설계도로 삼는다. 둑이 완성되자 욕구는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
욕구와 '이성'이 균형을 이루며 만들어 내는 강의 흐름이 바로 '감정(태도)'이며 균형과 흐름 상태에 따라 감정(태도)의 종류도 다양하다. 욕구는 원초적 감정으로 출발해 이성의 보완을 거쳐 사회적 감정이 된다. 사회적 혐오도 포보스phobos와 미소스misos라는 두 종류가 있고 이것들이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힐 경우도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감정의 폭주를 이성의 둑이 버티지 못하거나, 둑 자체가 왜곡된 구조로 쌓여 흐름을 왜곡해 4대강처럼 서서히 썩게 만들 때. 동성애 혐오homo phobia는 전자에 좀 더 가깝다.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생존 욕구를 지닌 인류는 외부 오염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혐오를 발동하게끔 진화했는데, 그것이 외집단이 아닌 내집단에까지 튀는 오류가 발생했다(마사 너스바움 <혐오에서 인류애로> 참조). 이걸 해결하려면 둑을 튼튼히 쌓아줘야 한다. 즉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사회 규범이 확립되어야 한다.
반면 여성혐오misogyny는 둑 자체가 왜곡된 구조로 쌓여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다. 사고 구조, 두뇌 회로가 남성중심적 가치관대로 굳어버려 이 패턴을 벗어나는 방식대로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다. 분노한 자연이 둑을 무너뜨려 버릴 때가 있듯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것을 인식한 여성들이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라' 인정욕구를 분출해 엎어버리는 것이다. 현재 여성운동이 주로 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역사적 경험과 일치한다. 또한 어느 정도 변화를 이끌어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변했고 현대인들이 마주치는 둑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다. 리모델링을 노리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더라도 어쨌든 사람들은 다시 이성적 근거들을 주워 모아 새로이 둑을 쌓아올릴 것이다.
욕구를 그냥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그때 어떤 설계도를 갖고 둑을 쌓아야 다시는 여성혐오가 발생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나는 중·고등학교에 철학 교육, 성인지 교육을 도입하는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말logos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ethos와 감정적 연대pathos를 나눌 수 있는 습속ethos을 형성'해주는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여성혐오'라는 말을 사람들이 들었을 때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고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성적 힘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성적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왜곡된 편견과 공포심에 휩쓸리지 않고 서로의 성적 지향을 존중하는 사회 규범을 쌓아올릴 준비도 될 것이다. 이성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 단, 이성을 잘 발휘하도록 습속을 형성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류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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