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시선2015 세계지식 포럼에서
허영진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 아빠 회사에서는 가끔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컨설팅(Consulting)이라는 것을 받을 때가 있어. 컨설팅이 뭐냐 하면 예를 들어서 네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는데,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는 거야. 매일 연습을 하고 있는 데도 말이야. 그럴 때, 경험이 많거나, 관련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너를 관찰하고, 상담도 한 후에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거야.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지에 대한 개선점을 찾아서 제안하는 거지.
그건 매력적인 일이야. 그러나, 아빠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모두를 판단할 수 없겠지만, 컨설턴트들을 보면, 참 '컨설턴트스러운' 부분들을 막상 겪어 보면 실망스럽기도 해. 그들은 우선 무척 모호하게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특히 외국인 컨설턴트의 경우는 더 심하단다.
예를 들면,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단다. 식당이 있다고 치자. 그 식당은 평범한 상권에 있는 중국 음식점이야. 그런데, 경기가 안 좋아지니까 사람들이 씀씀이를 줄이고, 주변에 새로운 중국 음식점들이 생겨서 경영상에 문제가 생긴 거지. 그래서 컨설턴트를 고용했는데, 컨설턴트가 의뢰인의 식당을 분석한 후에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 집의 문제는 이 집만의 고유한 중국 음식점 브랜드와 정체성(Identity)이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종업원들의 서비스나 음식 메뉴에도 특별한 차별화(Differentiation)가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식당을 경영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지. 만약,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는 직원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니 넌 어떤 생각이 드니?
대부분 경영 컨설팅을 위임할 때는 문제점을 알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듣고 싶은 것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아진다'와 같은 직접적인 방법에 대한 부분들이지. 하지만, 그들은 직접적인 해결안은 이야기 하지 않아. 아빠는 이런 모호한 이야기가 너무 너무 싫어서, 그 '어떻게'라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어보는 편이란다.
그럴 경우, 보통 유명한 컨설팅 회사들은 정보가 많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의 사례들을 가지고 와서 펼쳐 놓고,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 그 사례는 대개 서구권 선진국의 사례가 많단다.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고 말이야.
더 짜증나는 건, 우리나라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시선이지.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경제 규모상 서구 국가보다는 밀리긴 하지만, 디지털 분야 같은 경우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이미 우리가 그들의 사례보다 더 앞서 가 있는 경우도 많아.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미 시점이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단다.
게다가 우리 시장이나, 기술적 수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서구의 것이 더 낫다는 전제를 무의식적으로 깔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꽤 많단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여과 없이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는 거지.
그러고 보니,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좀 더 설명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컨설팅은 중요하단다. 대부분 컨설턴트들은 똑똑한 사람들이고, 한 회사에 대해서 그 회사 직원만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 동시에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도 하고 말이야.
아빠가 말하고 싶은 건, 서구권 컨설턴트들이 자신의 경험치와 사고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간주하고 마치 한국이 아시아를 계몽해야 할 대상, 그러니까 가르쳐 주고, 이해시켜줘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 좀 화나는 거란다. 최악은 아시아 시장에서 약간의 경험치를 가지고, 마치 엄청난 이해도를 가진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경우지. 만약 네가 방콕에서 반 년을 살았다고 생각해보자. 그 다음에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난 태국 시장에 대해서 모든 걸 다 파악했어.' 이런 표현에 동의할 수 있겠니? 한 금융사의 아시아 사업을 부흥시켰던 외국인 CEO는 이렇게 말했단다. "아시아의 나라 각각의 속성을 보지 않고, 아시아라는 하나의 틀로 보는 순간, 반드시 아시아 개별시장에서 실패하게 돼 있다"라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새로 오는 많은 서양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아시아, 주로 극동 아시아 국가라는 큰 개념으로 묶어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더구나. 마치 우리가 동남아라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우리 나라 기준으로 서남아시아인 베트남, 태국, 필리핀을 묶어서 인식하려는 경향과 다를 바가 없기도 한 거지.
한스 롤링이라는 유명한 학자는 2050년에는 인구가 90억 명에 달할 것이고, 현재 서구 수준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인구가, 서구권이 10억 명이라면, 아시아권이 20억 명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TED라는 유명한 강의에서 인구학적인 연구 근거를 가지고 설명했단다.
네가 살아나갈 미래의 세상은 좀 더 글로벌해질 것이고, 우리 사랑스러운 딸도 그 세상에서 다른 나라를 이해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스탠더드라는 건 '상대적'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해주렴. '역지사지'라는 성어는 개인의 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 문화권과 문화권, 시장과 시장 사이에서도 무척 중요하단다.
점점 세계는 하나로 묶어지고 있는 세상. 네가 살아갈 세상의 더 좋아진 글로벌 스탠더드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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