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에서 조업하다가 선상살인이 발생한 원양어선 광현 803호(138t) [남해해양경비안전본부 제공]
연합뉴스
인도양에서 조업하던 원양어선 광현 803호에서 20일 오전 2시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베트남 국적 선원 노동자가 술김에 한국인 선장과 기관사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칼부림에 희생된 가슴 아픈 현실과 함께 베트남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종적인 반감이 온라인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선 지난1996년 사모아 섬 부근 해상에서 조업하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 15호에서 중국동포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한 11명을 살해한 페스카마호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필자는 당시 가해자 측 일원으로 실형을 살고 추방된 인도네시아인 선원들과 그 가족으로부터 선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고, 지금까지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광현 803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페스카마호와 미리 연관 지어 말하는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이로울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상반란 원인을 분명하게 규명하기 양측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은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원양에서의 조업과 생활, 선원 인권 현실 등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기를 바란다.
한국 원양어선의 열악한 노동 조건한때 수산업, 특히 원양어업은 우리나라가 달러를 벌어들이는 주요 수단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해당 업종 종사자들에게,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근무하면 병역 특례를 인정해 주었다. 그들은 산업역군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선원이 되어 대양을 누볐었다.
그러나 원양에서의 조업환경이나 생활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할만큼 열악하다. 주야를 구분하지 않는 강도 높은 노동량, 오랜 선상 생활로 인한 향수 등은 산업화 이후 원양수산업계로 하여금 인력난을 겪게 하는 주원인이 되었다. 사실상 기술 집약 산업이 아닌, 수산업과 같은 1차 산업은 경제 성장 후에는 열악한 근로조건 대비 저임금 구조여서 선진국에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원양이든 연근해든, 어로계약은 어획량에 따라 수익이 배분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조업에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선사는 건조된 지 삼사십 년이나 된 노후화된 선박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아, 선상에서의 작업환경은 오히려 점점 후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 원양과 연근해 선박의 상당수 선원은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모집된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문제는 열악한 근무조건 외에도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인한 한국인 선원들과 이주노동자 선원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이러한 갈등은 선상에서의 상습적인 폭력이나 임금체불과 같은 인권침해, 그에 따른 반발로 인한 선상 반란으로 이어지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잘 알려진 사례로 2011년 6월 19일, 뉴질랜드 해역에서 조업하던 오양 75호의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은 배 위에서 한국인 선원들에 의한 각종 폭력, 그리고 회사로부터의 임금체불 등을 견디다 못해 배가 뉴질랜드에 정박한 사이 집단 하선했다.
이후 오양 75호를 비롯한 한국 원양어선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뉴질랜드 언론은 연일 이 문제를 헤드라인으로 다루었다. 결국 2012년 3월 초, "수많은 외국원양어선 중에서 유독 한국 배에서만 문제가 발견되었다"는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한국인 갑판장은 우리를 짐승처럼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