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진이 쓴 <음모론의 시대>
문학과 지성사
고통 그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까닭을 알려줘 고통에서 비롯한 감정적이며 도덕적인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하지만 혼란의 시대에서 정치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 했다. 당사자들은 고통의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고 스스로 고통의 이유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음모론이 판을 치고, 사람들이 이를 때로는 사실보다 더 신뢰하게 된 것이다.
음모론이 자리를 꿰찬 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목함지뢰 사건으로 북한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SNS에 대한민국 국방부가 보냈다는 설명과 함께 "전쟁이 선포되면 만 21세에서 33세 사이 남성은 즉각 소집에 응해야 한다"는 문자메시지 내용이 올라왔다.
그리고 지난 여름 메르스 사태 당시, SNS를 통해 숨만 쉬어도 감염 된다는 내용을 비롯해 메르스 치료병원으로 지정된 병원 이니셜이 언급되며 병원 내부소식이 스마트폰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이외에도 일상적으로(?) 사회·정치적으로 반향이 큰 사건이 일어날 때면 연예인 스캔들이 시간차를 두고 터지는 것에 대해 네티즌들은 사건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없으니 섣불리 믿으면 안 된다. 안정적인 것이 희소해졌으니 조심해야 한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변을 면밀하고 신중하게 둘러봐야 한다. 음모론은 편집증에 걸린,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적합한 세계의 관찰 방법이 되었다"(<음모론의 시대>, 27쪽)
우리 사회에서 음모론이 힘을 얻고 퍼져나간 이유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었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는 정부가 독점한 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터진 지뢰, 휴전선 인근 포화 소리였다. 생명에 대한 위험이 난생처음 실감되는 때에 정부는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확인되는 사망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이처럼 국민이 체감하는 불신과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불어갔지만 국가는 그 당시 국민들의 감정, 느낌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 행동 등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나온 게 음모론이다. 음모론을 저자가 '현대인에게 적합한 세계의 관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음모론이라고 믿었던 사건들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모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음모론은 그저 사실과 동떨어진 거짓이나 흥미를 위한 가십이 아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의견, 의혹, 새로운 비판이론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음모의 세상에는 오직 두 진영만이 존재한다. 적과 우리 편, 나쁜 놈과 좋은 놈,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 꾸미는 자와 넋을 놓은 자,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대화? 타협? 협력? 음모를 꾸며 우리 세상을 없애려는 적은 그럴 대상이 아니다. 적은 단지 섬멸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정적을 관용하는 민주주의를 믿는 것은 적의 간계를 허용하는 멍청한 일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음모적 사유에 기초한 세계관은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른다."(<음모론의 시대>, 31쪽)
저자가 이야기하는 음모론의 정치적 매력이다. 국가가 유언비어, 음모론에 대해 보인 태도는 엄단, 처벌이었다. 그러나 음모론은 불안에 떠는 사회 구성원이 찾아낸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증거 차원에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사회 갈등이 심화되는 이 시점에 음모론이 또 다시 자리를 꿰차기 전에, 국민들이 느끼는 고통과 혼란에 공감하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생각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음모론의 시대>를 추천한다. 그의 연설문처럼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말이다.
음모론의 시대
전상진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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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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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추천합니다, 국민의 고통을 덜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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