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수도원을 개조한 알베르게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순례자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묵는다
정효정
이곳은 12세기 순례자를 위한 병원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유일한 숙소이기에 피레네를 넘은 순례자들은 순례의 첫날을 이곳에서 마무리한다. 입구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체계를 갖추어 파김치가 된 우리들을 맞이했다. 이제 순례 1~2일차인 순례자들은 어리버리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은 능숙하게 신발장, 리셉션, 침대로 가는 길 등을 가르쳐줬다.
리셉션에서 크레덴시알 (순례자여권)에 도장을 찍은 후, 설문지를 하나 받았다. 국적, 성별, 종교 그리고 왜 이 길을 걷는지 등을 묻는 설문지였다. 보기에는 '종교적인 이유', '정신적인 이유', '문화체험', '스포츠활동', 그리고 '기타'가 있었다. 잠시 멈칫했다.
매일 길을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이유를 묻는다. 자신이 걸으면서도 옆에 걷는 사람들이 신기한가보다. 사실 차로 다닐 수 있는 길을 매일같이 걸어서 간다는 건 '일상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어야 설명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저마다 이유가 있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어서',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 등 삶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혹은 '유방암 4기여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서', '이혼을 해서' 등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길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로 향하는 노란 벽돌길 같았다. 사람들의 눈빛에는 이 힘든 여정을 걷고 나면 자신의 무언가가 변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실려있곤 했다. 아픈 마음이 치유되거나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알게 되거나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