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놓인 부츠들함께 긴 길을 걷다보면 짝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효정
무엇보다 "인생의 답을 찾아 800km를 걷는 여행자"라는 말에 내 심장은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까다롭지 않고 여행을 좋아하며 삶의 태도가 진지한 사람, 내 이상형이다. 기본적으로 장기여행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무난하게 잘 자고 잘 먹는 타입들이 많다. 30~40여 일을 도보여행을 할 정도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답을 찾아 이 먼 길을 걷겠다고 결심할 정도면, 삶을 대하는 자세 또한 진지하지 않을까? 그래, 어쩌면 산티아고에 내 이상형이 있을 수도 있다.
"산티아고에 괜찮은 사람이 많아요"라는 그 다정한 목소리는 어느덧 왜곡되어 내 귀에 이렇게 들리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에 물이 좋아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다가 있다 어느덧 산전수전 다 겪은 30대. 심지어 후반전에 들어섰다. 이제 택배로 온 이케아 가구 정도는 가뿐하게 혼자 조립하는 경지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것은 성격이다. 송곳 같던 20대와 비교하면 얼마나 많이 둥글어졌는지 모른다. 오늘의 내 성격이 내 인생 최고의 성격이고, 내일은 더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 연애다. 이상하게도 분명히 성격에는 여유가 생겼는데, 연애에 대해선 아직도 20대 초반처럼 소심함과 엄격함을 고수하고 있다. 패인을 분석해보면 일단 연애패턴이 소극적이다. 늘 누군가 먼저 다가오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런 패턴에 위기가 오기 시작했다. 점점 다가오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그나마 더욱 엄격해진 '취향의 체'로 거르고 나면 남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