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문화콘텐츠진흥원 북경사무소를 찾은 한국 관계자들에게 중국 문화 산업을 설명하는 권기영 교수
조창완
학생들 뿐만 아니다. 전문가 그룹 역시 비효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기자가 아는 한국내 최고의 중국 콘텐츠 전문가는 현재 인천대에서 강의하는 권기영 교수다. 권 교수는 2001년부터 10년간 문화콘텐츠진흥원 북경사무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중간 문화 콘텐츠 교류의 전반을 조율하고, 실무를 추진한 책임자였다.
2005년 출간된 황의봉 전 동아일보 중국특파원이 쓴 '중국통'에서 문화 콘텐츠 전문가로 소개될 정도였다. 그런데 권 교수는 베이징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안전한 계약직 전문 공무원보다는 대학 교수가 휠씬 안전하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한중 문화콘텐츠 교류의 실체를 파악하고 조율해 줄 수 있는 최고급 실무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아빠 어디가'나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은 각기 1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지만 한국이 얻는 수익은 극히 일부다.
포맷 판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출하고, 대본을 쓰고, 연기한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 이에 못지 않은 매출을 만들고 있지만 그 열매는 이 드라마에 530억원을 투자한 중국 화처미디어가 가져가고 있다.
현장형 중국 전문가가 키워질 수 없는 것은 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 등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외국 투자유치를 위해 만든 경제자유구역의 경우 현재 중국 전문가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8개 경제자유구역청에서 근무하는 중국 전문가는 10여명 수준이다. 서기관급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무관급도 4명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경제자유구역들은 모두 중국 투자유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대중국 기획을 하고, 실무를 추진할 수 있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곳곳에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두 주체간에 갈등을 잘 완화시킬 협상가만 있었다면 '먹튀'라는 오명을 듣고, 철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3년 부산 해운대 엘시티 프로젝트에 투자를 결정했다가 결국 무산된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엘시티측에 중국의 입장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중재해줄 중국 전문가가 있었다면 중국측이 이 사업에서 철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중국 측의 철수 후에 분양 등이 잘 진행되고 있지만 중국의 대표적인 국영 건축기업이 부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얻는 다양한 가치는 잃었다.
글의 시작에서 소개한 정인갑 교수는 중국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국 자체의 크기를 간과하지 말라고 말했다. 1901년부터 나온 한자무용론이 100년 넘는 토론을 거치면서 키보드 입력 시스템에서 가장 편리한 문자로 인정받아 논란이 종식된 것을 예로 들었다. 쑨원 시대에 주장됐다가 수리공정을 잘 아는 장쩌민 시대에 구체화된 산샤댐 등 긴 토론을 통해 때를 만나는 중국인들의 습성을 모르고서는 중국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상 드물게 중국 앞에서 당당했던 지난 이십여년은 분명 의미있는 시간이지만 기억을 그곳에만 두고 있다면 한국은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고, 이미 닥친 경제위기조차 피해가지 못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의 한 성 규모다규모에서 중국은 이제 한국을 압도한다. 한국과 마주하고 있는 산동성은 중국 31개의 성시중 하나지만 2014년 호적조사에서 인구가 9747만1000명으로 한국의 두배에 가깝고, 2015년 GDP는 6조3002억3000만위안(기준율 달러 9555억 달러)으로 1조 3212억달러인 한국의 72% 가량이다.
산동성의 최근 경제성장률이 8% 정도인 것과 한국의 성장 정체를 감안하면, 산동성의 규모가 한국을 앞지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산동성을 보는 시각은 한국의 한 광역지자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개혁개방 이후 한국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다양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생각속에 한국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던 속국 정도다.
중요한 것은 향후 한중관계가 어떤 모습을 띨 수 있는건가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수천년간 중국의 지배에 들어가지 않고 독립적인 언어와 국가를 유지한 것은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중국 속에서 중국의 힘을 활용해 독립운동을 했던 백범 김구나 단재 신채호 등도 한국은 중국과 동화되지 말고, 한국만의 자존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중국은 이제 원래 지위를 되찾아 세계 헤게모니를 좌우하는 국가가 됐다. 반면에 대기업 중심으로 중국을 활용해 경제를 유지발전하던 한국의 역할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을 상대해 자존을 지키고, 미래 비즈니스가 가능한 분야들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 중국을 보아왔던 시각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이 이유다.
요즘 대중국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나오는 단어가 '먼 곳과 교류하고, 가까운 곳은 공격한다'는 뜻의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진(秦)나라 정치가 범저(范雎)가 이 전략을 내놓은 후 중국의 외교정책을 대표하는 말인데, 중국과 가까이 있는 한국에게는 분명히 즐겁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지난 수천년간 크고 작은 중국의 변화속에서 한국의 자존을 유지했듯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지속된다는 신뢰 속에서 한국 스스로의 자존을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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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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