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정부의 학부모 주민 집단 성폭행 사건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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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불거졌다. 전남 목포 경찰서가 성폭행 혐의자 3명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검찰이 거부한 것이다. 이후 논란이 되자, 검찰은 피의자가 "도주 및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고,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을 잘하고 성실히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성폭행은 증거인멸의 위험이 매우 클 뿐 아니라, 추가 범행이나 재범 가능성이 매우 높은 흉악범죄다. 실제로 가해자 중 일부는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난 뒤 새벽 2시경 현장을 다시 찾아갔다. 추가 범행이나 증거 인멸 등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생존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공범들이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모 사실을 부인하는 등 증거조작을 위해 '입맞추기'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후 영장실질심사를 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의 태도가 지극히 안일하고 무책임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찰이 세월호 추모 행사 등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번개같이 영장을 청구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피의자들이 구속된 직후부터는 언론의 몰상식한 보도가 터져나왔다. 여론이 들끓자 사과하기는 했으나, <헤럴드경제>는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 속 세 명의 정액"이라는, 언론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문제는 흉악범죄를 선정적 눈요깃거리로 만드는 상업주의만이 아니다. 이 보도에는 피해자를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물로 보는 가해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으며, '만취'라는 표현으로 보도를 시작함으로써 책임을 생존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다른 언론사들 역시 문제의 핵심을 간과하거나 엉뚱한 곳에 원인을 돌렸다. 예컨대 <매일경제>는 "집단성폭행 이면에 깔린 '폐쇄적 공동체'의 집단범죄"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섬 마을의 폐쇄성"에서 찾았다. <뉴데일리>와 <노컷뉴스> 등도 제목에 '악마의 섬'이라는 표현을 넣어 보도했고, <문화방송>과 <세계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언론은 '단독거주 관사'를 문제 삼았다.
최근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교사의 70%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경험했다. 이들 대다수는 '섬,' '오지', '단독거주 관사'와 아무 관련 없는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해자들 1위는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들이었다. 교장이나 교감 직위에 섬 출신을 특별 우대하는 게 아니라면, '섬마을의 폐쇄성'은 한국에 만연한 성범죄와 아무 관련이 없다.
비록 <헤럴드경제>만큼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망정, 대다수 언론이 이런 몰상식한 보도로 일관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니 관계당국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신안군의회는 여교사 숙소를 "좀더 안전한 2층에 배정한다"는 대안을 제시했고, 교육부는 "여교사 도서벽지 신규발령을 자제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특정 지역'이 문제라고?여기서 그 지겨운 지역 이데올로기를 꺼내는 사람들도 있다.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유사 사건을 보자. 20대 남성 3명이 스웨덴 여성에게 접근해 '한국의 클럽 문화를 소개해주겠다'며 만취하게 만든 뒤에 집단성폭행한 것이다. 이들은 범행을 자랑하기 위해 '인증샷'까지 찍었다. 내가 알기로, 사건이 일어난 '홍대 앞'은 섬도 아니고, 문제의 특정 지역에 위치해 있지도 않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성범죄 발생 건수가 가장 높은 지역 1위는 서울이고, 2위는 경기도다. 서울의 발생 건수는 압도적이다. 인구수 대비를 보아도 1위는 서울이고, 그 다음이 부산, 광주, 인천 등으로 이어진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한국인이 산다'는 점과, 인구밀도가 다른 도시들보다 높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성폭행은 지역과 상관 없는 한국사회의 문제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폭력적 남성성의 문제다.
성폭행을 부추기는 폭력적 남성문화의 역사는 질기고 뿌리깊다. 2004년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을 보자. 10대인 고등학생 수십 명이 여중생 한 명을 1년 넘게 집단성폭행한 이 사건은 학부모 주민 집단성폭행 사건이나 홍대 사건, 그리고 불법 성인사이트 '소라넷'에서 벌어진 집단성폭행 사건들과 본질적으로 같다. 가해자들은 협박하거나 여자의 정신을 잃게 만든 뒤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불특정 다수를 범행에 '초대'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에게 여성은 판단력도, 감정도, 존엄도 없는 '성기'에 불과했다.
동물학자 프란스 드 발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영장류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본능적으로 타고 난다고 말했다. 공감 능력이란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으로, 이런 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한국의 폭력적 남성문화는 자연적 공감 능력을 차단함으로써 '문화적 소시오패스'를 만들어낸다.
물론, 다수의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반대론'을 꺼내들 것이다. 그런 남자들은 예외적이거나 소수일 것이고, 적어도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다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