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애기봉 오르는 길에 세워진 해병대의 구호가 인상적 입니다.
추광규
# 전방부대 입소는 1983년 5월경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최전방인 철원에 위치한 6사단으로 입소한 후 사나흘간 FEBA(Forward Edge of the Battle Area, 전투지역전단) 지역에서 훈련을 한 후 GOP(일반전초)에 투입된 것은 목요일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현역 사병 2명 그리고 입소한 대학생 2명이 1조가 되어 경계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밤새 이어졌던 남북간의 치열한 선전방송이었습니다.
수킬로 앞 북쪽에서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 동지...."라는 대남선전 방송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맞서 남쪽에서는 대북방송으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틀고 있었습니다.
양쪽의 선전방송은 산에 부딪힌 후 메아리치면서 1980년대 남북 간 날카롭게 대치하는 시대상황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남북 간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선전방송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멈추었습니다. 북쪽이 대남선전방송을 멈추는가 했더니 남쪽에서도 틀어대던 노래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동틀 녘까지 이어지는 것은 적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소음이 컸던 것에 반비례해 고요함은 더 짙게 느껴졌습니다. 남북 간 선전방송 소음을 대신한 것은 이름모를 산새의 울음소리였습니다. 여기에 새벽 안개속에 드러나던 기나긴 철책선의 모습은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기억속 깊숙하게 들어박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