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을 펼쳐들고...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신은미
호텔방에 짐을 풀고 안내원 김혜영 선생 그리고 리용호 운전기사와 함께 식당으로 간다. 점심때 송도원에서 생선회와 어죽을 너무 과하게 먹어 간단히 먹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메뉴판을 펼쳐들곤 몇 장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산해진미가 다 적혀있다. 원산이 가까우니 해물요리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온갖 산나물이, 게다가 집을 떠나 오래 있다보니 생각나는 서양요리까지…. 국수 한 입만 먹겠다고 왔건만 유혹을 못 뿌리친다. 내 나라 산천에서 나오는 산나물을 주로 주문했다. 된장국과 함께 더덕구이, 드룹나물, 고비나물, 도라지나물, 취나물, 깻잎장아찌, 감자지짐 등. 운전하느라고 힘들었던 리용호 운전기사를 위해 돼지갈비 스테이크도 함께.
식사를 마칠 무렵, 웨이트리스가 또 다른 메뉴판을 들고 왔다. 내일 아침식사를 무엇으로 하고 싶냐고 묻는다. 메뉴에는 조선식, 양식, 중식, 일식이 모두 있다. 웨이트리스는 내일 아침 일식은 산천어구이라면서 은근히 눈빛으로 권한다. 수박향 나는 산천어의 유혹을 떨치고 내 나라 조선식으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디저트로 무엇이 좋겠냐고 묻는다. 메뉴에 쑥인절미가 있기에 그것을 주문했다. 오늘 밤 준비를 해놓겠단다. 호텔요금에 포함돼 있는 아침식사를, 그것도 디저트까지 무엇으로 먹고 싶냐고 묻는 호텔은 아마 이 마식령 호텔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겨울 스키 시즌 때 꼭 다시 오자고 굳게 다짐한다. 이곳 마식령에서 스키를 즐기며 며칠을, 그리고 명사십리가 있는 갈마반도에서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며칠을 즐길 상상을 하니 내 마음은 곧바로 남녘 동포들에게로 다가간다.
남한 정부가 5.24 조치를 풀고 원산관광을 허락한다면 이곳은 모름지기 남한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원산의 송도원, 갈마반도의 명사십리, 마식령, 울림폭포 그리고 금강산을 잇는 이곳 동해안은 가히 세계적인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동포들이 사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대자연 속의 밀림... 한 폭의 동양화로구나
아침에 일어나 발코니에 나가봤다. 안개에 싸인 호텔 입구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아침 공기를 마셔본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 '종북몰이'도, 세상살이도, 모든 것이 하잘 데 없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안개가 걷히면서 스키장 입구 왼쪽으로 슬로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당히 긴 슬로프가 무려 10개나 된다고 한다. 흰눈으로 덮여 있을 스키장을 상상해 본다. 만약 평창 겨울 올림픽을 이곳에서 분산 개최한다면 민족의 화합을 위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