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테우
권철
권철은 이호테우 사진을 해녀 탈의장에서 전시하였다. 사진의 주인은 그 일의 터전을 잃어버릴 해녀들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야스쿠니 사진들을 이호테우 해변에서 길거리 전시 한 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다. 그는 이제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 한 후 그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사진가다다.
사건을 기록하는 사진가를 다큐멘터리 사진가라 할 때 사건을 기록하고 나아가 기록의 메시지를 행위로 실천해내는 사진가를 다큐멘터리 행위사진가라 부른다면, 그것은 권철을 일컫는 규정이다. 그는 야스쿠니 사진을 불 태웠던 곳 이호테우 매립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주 전 지역을 순회 전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서 행동하는 사진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지점이다. 사진가들이 예술을 위해 장르를 넘나드는 퍼포먼스를 할 때, 권철은 역사를 위해 기록을 넘는 행동을 한다.
권철이 세상을 독대한다는 것은 곧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역사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그의 독대는 중의적이다. 거리 전시를 한 후 사진을 불태우는 행위는 시인 엘리어트가 말하는 바,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생명이 태어나니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 그 메시지를 외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 또 한 가지가 읽힌다. 그가 태운 것이 사진인데, 그 사진이란 한낱 이미지일 뿐이다.
그 본질을 갖지 못하는 허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작품성이 있네, 없네라고 평가하고, 그것도 부족해 줄 세우고, 자기들끼리 짜고, 나눠 먹고, 예술이라 부르는 이름으로 노닥거리는 한국 사진판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다. 이미지 숭배라는 그림자놀이에 침을 뱉는 것이면서 동시에 지금 당신들이 즐기는 그 연줄이라는 게 곧 불타 없어지고야 말 한 줌 재도 안 되는 권력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권철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걸 후회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진계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가 20년간 살아온 일본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쁘고, 저질스럽고, 무식한 나라가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극우 파시스트적이어서 아직도 제국주의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여서 이웃 나라와의 평화를 깨는 일을 하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 대해 배려할 줄 알고, 돈이 없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곤 하지 않는다.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접을 받는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철면피의 세계다. 비단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계가 더욱 그렇다. 권철이 귀국한 것을 후회한 것은 이규상이 염려하듯 인프라가 부족해 고난을 겪어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의 사진판이 돌아가는 법칙, 바로 '그들만의 리그' 때문이다. 권력이 있는 자는 권력 행사를 못해 안달이고, 어중간한 사진가들은 그 주변을 서성거리고 싶어 안달이다. 한 사진가로 하여금 좌절하게 한 이유가 바로 이 한국 사진계의 연줄과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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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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