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단 내 '충장공 정발 장군 비' 바로 뒤에는 본래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자리를 말해주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정만진
실록의 기사와 송시열의 기록이 많이 다른데선조실록 4월 13일자에는 '왜구가 침범해 왔다, (중략) 적선이 바다를 덮어오니 부산첨사 정발은 마침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면서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기고 대비하지 않다가 미처 진(鎭)에 돌아오기도 전에 적이 이미 성에 올랐다, 발은 난병(亂兵) 중에 전사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발이 사냥을 즐기며 놀던 중 '바다를 덮은 적선'을 보고도 조공선이라 여겨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고, 성이 함락된 뒤에야 성으로 돌아왔으며, 난장판의 와중에 전사했다는 내용이다. 적선이 바다를 뒤덮은 채 밀려 오는데도 조공선으로 여겼다? 영도에서 부산진까지 오기도 전에 성이 이미 함락되었다? 상식적으로 보아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선조수정실록은 조금 다르다. 수정실록 4월 13일자는 '14일 왜적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략해 와서 (중략) 부산 첨사 정발은 절영도에 사냥하러 갔다가 급히 돌아와 성에 들어갔는데 전선은 구멍을 뚫어 가라앉히게 하고 군사와 백성들을 모두 거느리고 성가퀴를 지켰다, 이튿날 새벽에 적이 성을 백겹으로 에워싸고 서쪽 성 밖의 높은 곳에 올라가 포를 비오듯 쏘아대었다, 정발이 서문을 지키면서 한참 동안 대항하여 싸웠는데 적의 무리가 화살에 맞아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정발이 화살이 다 떨어져 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자 성이 마침내 함락되었다'라고 말한다.
정발이 영도에 사냥을 갔고,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식의 기록은 박동량(朴東亮, 1569-1635)의 <부태소록>에 전하는 내용이다. 박동량은 '첨사 정발은 그 전날 절영도에 수렵을 나갔다가 숙취(宿醉, 크게 취함) 미성(未醒, 술이 덜 깸)한 채 바다를 덮고 밀려드는 적선단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 "세견선이 오래도록 오지 않더니 이제 비로소 오는 것이로다" 하고 뇌까렸다'라고 적었다. 박동량의 표현에 대해 <임진전란사>의 저자 이형석은 '순국지장(殉國之將)을 욕되게 하는 바가 크다"면서 "무장을 예우하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형석은 송시열의 증언에 근거하여 박동량의 기록, 즉 실록의 '세견선 오인' 기록을 '취하지 않는 바이다' 하고 역사가로서의 견해를 밝혔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증언은 박동량 및 실록과 전혀 다르다. 본 기사에 쓴 정발과 노모의 대화, 정발과 아들의 이별, 노모의 원통한 절명, 애향과 용월의 죽음, 정발과 이정헌의 분투 등도 송시열의 <우암집>과 그가 쓴 '정발 묘갈명(墓碣銘, 묘비에 새긴 글)'을 인용한 것이다.
송시열은 '뒷날 왜장 평조신(平調信)이 통신사 황신(黃愼) 공에게 공(정발)의 충효(忠孝)를 자주 언급하며 "그때 우리 군대가 부산에서 크게 패하였다"라고 말했고, 공의 첩 애향이 함께 자결한 일을 얘기하면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라고 강조한다. 송시열은 '공은 나라 사람들만 칭송할 뿐 아니라 못된 왜적들까지 칭송하였고, 못된 왜적들이 공만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공의 첩까지 칭송을 하였으니, 공이야말로 평소에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라고 칭송했다. 송시열은 정발을 언행일치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조선 시대 성리학의 표상으로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송시열은 '부산첨사 정발은 임진년(1592) 왜변(倭變)을 당하여 성을 지키며 왜적들을 죽이다가 힘이 다하여 목숨을 바침으로써 대절(大節)을 세웠다'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송시열은 정발 묘갈명의 마지막 문장을 '내가 명(銘)을 짓지 않으면 누가 파묻힌 일을 드러내어 알리겠는가'로 장식했다.
나 역시 오늘 정공단을 소개하는 이 기사문을 써서 실록의 잘못된 정발 언급을 바로잡고, 공의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언행일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글의 마지막 문장 역시 '내가 이 기사를 쓰지 않으면 누가 정발, 이정헌, 애향, 용월, 그리고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성에서 전사한 1천여 선조들의 뜨거운 마음을 세상에 드러내어 알리겠는가!'가 적당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