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라몬(누문), 조선통신사막부접우노지, 덕혜옹주결혼봉축비, 조선통신사 영빈관 자리에 세운 체육관
변종만
금석성은 도주 자리를 노린 친척이 대마호텔 부근의 도주관아에 불을 지른 대마도판 왕자의 난 때 불을 뚫고 도망친 장소에 3번째 성을 쌓은 관아로 소실되었다. 금석성의 대문격인 야쿠라몬(樓門)은 1990년 복원한 대마도에서 일본색이 가장 짙은 건축물이다.
1811년 제12회 조선통신사 366명은 에도까지 가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국서를 전달했다. 이때 조선통신사의 국서를 접수하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대마도로 건너온 '통신사 접반사'가 13군데 임시거처를 마련했던 곳에 세운 비가 조선통신사막부접우노지로 금석성 안에 있다.
덕혜옹주결혼봉축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는 결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1912년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덕혜옹주가 1925년 일본으로 끌려가 대마도주의 입양아 후예인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던 우리의 아픈 근대사라 가슴이 쓰리다.
한말 비운의 역사 희생양인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결혼 후 조발성치매증 악화·이혼·딸의 자살 등 비극을 겪다 1962년 귀국해 낙선재에서 지내다 1989년 한과 애달픔이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 십시일반으로 비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아랫단 위에 그 당시를 상징하듯 동전들이 놓여있다.
야쿠라몬 안쪽에 역관사와 상인들의 교역장소로서의 기능이 컸던 조선통신사의 영빈관이 지금의 체육관 자리에 있었다. 체육관을 건축할 때 땅에서 고려기와, 조선기와, 조선토기가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