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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율
정치 혐오는 무엇에 의해 지탱될까. 우선 다시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역설이 고개를 든다(가령 "이런 소식 보고 듣지 않고, 싫어하고 반대하고, 역겨워할 권리도 인권입니다" 같은 베댓). <그림6~7>에서 볼 수 있듯 '인정'받아야 하는 건 성소수자들의 '문화'가 아닌 혐오할 '권리(인권)'이며 이를 무시하면 '역차별'이라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에이즈 치료 비용에 '세금'이 쓰이고 서울시가 퀴어축제 장소를 '지원'해줬다는 사실이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무임승차론이 제기된다. 동성애 혐오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1등 시민이며 동성애자들은 2등 시민이라는 구색을 맞출 마지막 퍼즐 조각을 쥐게 되지만, 정작 완성된 그림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의료 혜택과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를 보장받는 현재보다 진보한 사회가 아니다.
그 사회는 차라리 강력한 조세 저항, 사회적 불신에 발목 잡혀 하향 평준화된 사회다. 그럼에도 <그림8>처럼 이 가치 체계는 '정상', '일반', '다수(에 의해 지지 받는 것)', '자연', '선'이라는 생각과 이러한 생각이 무너지면 '나라'가 작살난다는 '걱정'에 의해 지탱된다. 한편 지지대의 끝을 따라가보면 뜬금없이 후손(아이, 청소년, 애들, 딸, 며느리, 자식, 자손…)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
공포다. 한국 같은 저신뢰 사회는 사회를 진보시켜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붕괴한다. 관심사는 신변의 안전 수준으로 축소되고 현실에 순응한 군중들은 치열한 경쟁과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생존 공포를 공론장에서 해소하기보다 사적 친밀성의 차원에서 위로를 받는다. 가족주의, 즉 안정적이고 '평범한' 가족을 꾸리는 게 유토피아가 되는 문화가 출현한다(프랭크 푸레디 <공포 정치> 참조).
생존 공포는 인간 행위의 강력한 동기인 원초적 감정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의 '공포 관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지만,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두 심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며 불안, 공포를 느끼게 되고 대처 방법을 갈구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문화'다(한국 심리학회 <심리학 용어 사전> 참조).
문화는 의미와 가치들로 이루어진 상징 체계다. 인간은 문화의 일부가 되면서 상징적인 불멸(가령, 나는 죽어도 내가 속한 대한민국은 영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영혼 불멸설을 주장하는 '종교'나, 자신들이 속한 문화를 영속시킬 자신들과 닮은 '후손'에 강한 이입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문화는 옳고그름의 '잣대'를 제시하므로 이 세계관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 자존감도 준다.
그.런.데. 바로 이때 습격자들이 등장한다. 동성애자들이 광장에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다수가 따르는 종교관, 가족관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 체제를 따른다. 혼란스러움을 차분하게 견딜 힘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동성애를 '비정상' '병'으로 연관짓는 온갖 편견들이 고개를 들고 위험한 비탈길로 추락할 것이라는 공포가 극도로 치닫기 시작한다.
취업박람회가 열린들 모두 취업이 되진 않듯 퀴어축제가 열린들 모두 퀴어가 되진 않음에도,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암시되고 기성 문화와 자존감에 대한 위협으로 오인한 군중은 방어적, 공격적이 된다. 마침내 '천하제일 호모 포비아 축제'의 막이 열리고 군중은 혐오를 분출한다. 그러나 진정한 축제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를 성숙시킬 에너지를 충전하는 계기다(뒤르켐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참조).
가치의 창출은 공론장에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낼 때 시작된다. 인정욕구도 인간의 강력한 본성 중 하나이며, 때때로 인정 욕구는 생존 욕구보다 강하다("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반면 '천하제일 호모 포비아 축제'는 어떠한 가치도 창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 안의 어둠, '혐오'가 우리의 공포심을 약점 삼아 불사의 시민권을 획득하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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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두려운 가족들, '혐오'는 시민권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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