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 매니저들은 버려진 변기, 기타 케이스 등 다양한 용기에 농사를 시도했다. 그로써 모든 것이 텃밭이 될 수 있다는 걸,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걸, 무엇보다도 이 골목에서 카페 봄봄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사진은 디자인 텃밭 아이디어를 얻었던 2013년 도시농업박람회 때 영등포 자활센터에서 전시한 다양.
규카소
텃밭을 만드니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영등포역 뒷골목에 자리 잡은 지 3년이 지나도록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누구와 쉽게 말을 나눠본 적 없는 매니저들이었다. 그런데 화단에 이랑을 만들고부터는 골목사람들, 특히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늘이 많아서 텃밭이 잘 되겠나?""모종이 시들시들한데 물 좀 많이 줘야겠다.""방울토마토는 그렇게 촘촘하게 심으면 안 돼. 가지치기도 잘해야 하고….""텃밭이 생겨서 골목이 밝아지는 것 같네. 수고들혀.""우리집에 깻잎모종 많으니께 가져다가 심어."평소 깐깐한 줄로만 알았던 앞 건물 주인도 우리가 텃밭을 만들자 수고한다면서 음료수를 사왔다. 텃밭은 골목사람들과 말을 섞는 기쁨을 선사했다. 마치 텃밭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좀 더 눈에 띄라고 텃밭에 디자인도 입혔다. 전봇대에 3단 생수통 텃밭을 만들어서 걸었다. 버려진 변기와 여행용 가방도 텃밭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도 멈춰 섰다. 요상한 텃밭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말도 건넸다.
봄봄 매니저들은 모든 것이 텃밭이 될 수 있다는 걸,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이 골목에서 카페 봄봄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가끔 전봇대에 걸어둔 생수통 텃밭이 사라지기도 했다. 텃밭에 심은 모종이 파헤쳐진 일도 있다. 그렇다고 '텃밭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은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다. 서로 마음으로 나눈 약속을 매니저들은 끝까지 지켜냈다. 사라진 것보다 더 많은 걸 텃밭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연이란 소중한 선물이다.
텃밭을 만들고 나서 매니저들은 마을교사가 됐다. 동네 청소년들과 함께 모종을 심었다. 천연비료, 천연농약도 만들었다. 아이들과 같이 생수통 텃밭에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의 고민과 꿈도 알아갔다. 그렇게 텃밭은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골목사람들을 이어줬다. 봄봄텃밭은 골목사람들에게 작은 고향이 되어갔다.
사무실 벽을 허물자 카페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