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팀의 10년간 <조선일보>의 자살보도 핵심어 56개 출현 빈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워드클라우드 분석을 실시했음. 단, 연구팀이 직접 어휘별로 범주를 나누지는 않았으며 기자가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 나눴음을 밝혀둠.
하지율
첫째로, 한국기자협회는 자살이란 말을 헤드라인에 쓰는 걸 되도록 피하도록 요구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도 뉴스 수용자가 자극이나 정보의 기억을 위해 그것들을 서로 의미 있게 연결시키거나 묶는 인지 과정인 청킹(chunking)을 너무 쉽게 해버려 초점이 제한되거나, 자살을 손쉽게 개인 문제로 돌리는 태도를 취하지 못하게 유도한다(가령, '자살' '자살하다' 대신 '자살로 사망하다'로 늘여 쓰는 게 바람직). 하지만 <조선일보>의 '자살'이라는 어휘의 출현 빈도는 546에 달한다. 이는 <한겨레>의 462보다 약 15.4% 더 높은 수치다.
둘째로,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이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투신(49), 동반(21), 기도(16), 시도(16), 목 매(10), 아파트(9), 한강(9), 선택(9) 등 출현 빈도가 139에 달하고 다양한 서술로 자살을 묘사했다. 반면 <한겨레>의 경우 110으로 이에 못미쳤다.
셋째로, 연구팀은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자살문제를 보도할 때 공통적으로 장자연, 카이스트 사건과 같은 유명인의 자살이나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등과 같이 특정한 자살사건이나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략) 유명인의 자살보도는 자살모델로서의 동일시를 더 높게 일으키기 때문에 더 쉽게 모방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기별로 상세 분석을 해보면 2시기(2009~2011)에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에 집중한 반면 <한겨레>는 카이스트 사건에 더 높은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당시 <한겨레>는 카이스트 연쇄 자살 사건을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의 부작용으로 보며 '서남표' '총장'의 교육 방향에 의문을 던졌다. 유명인 개인보다 사회적 차원에 더 지면을 할애한 거다.
반면 <조선일보>는 카이스트(18)보다 장자연(51)이 세 배 가까이 높은 출현 빈도를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목적이 여론의 주도권을 선점하거나 조회수를 높이는 것이든 '경마 저널리즘'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불과 2주도 안 되는 기간 동안(2011년 3월 6일~3월 18일) <조선일보>가 '장자연'을 정확히 포함해 쏟아낸 기사는 약 42건에 달했으며(다음 뉴스 검색) 포털 메인에 올라간 기사도 4건이다. 화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연구팀은 "장자연 사건은 <조선일보>의 고위급 지도층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관심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살이 개인만의 문제? '사회 구조' 외면하면 사람 죽일 수도 있다그렇다면 워드클라우드에서 나타난 '가족주의 관련어'나 '예방상담 유도어'는 뭘까. <조선일보>는 자살과 관련해 아들(21), 가족(19), 딸(15), 아이(13), 어머니(13), 부모(11), 남편(9), 아버지(9) 등 총 110의 출현 빈도로 가족에 관한 어휘들을 언급했다. 이는 <한겨레>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또한 예방(33), 상담(9) 등 총 42의 출현 빈도로 예방상담에 관한 어휘들을 언급했다. 이는 <한겨레>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자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밝혀준다. 자살에 대한 편견과 정신적 충격으로 그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겪을 고통이 언급되어야 한다" "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를 넣어라" 등의 기준을 제시하며, 가족과 예방상담 관련어들이 보도에 언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이 부분 만큼은 <조선일보>가 <한겨레>보다 괜찮게 보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