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김덕진
평화콘서트 날은 2011년 9월 3일이었다. 그런데 비극은 바로 하루 전날 우리가 조금 방심하고 있을 때 시작됐다. 9월 2일 오전 5시 아직 동이트 기 전, 마을방송 스피커로 엄청난 소리의 싸이렌이 울려 퍼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벽, 경찰이 구럼비 해변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인 중덕삼거리 통로를 막고 울타리를 치는 공사를 위해 쳐들어온 것이다.
이미 오랫동안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그 삼거리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매일 노숙을 했고 목에 사슬을 감고 결사항전의 마음으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두 달 동안 준비한 평화비행기와 평화콘서트를 하루 앞둔 새벽, 우리는 군사작전을 하듯 쳐들어온 경찰들에게 순식간에 포위되었다. 모든 통로는 통제되었지만 주민들만 아는 샛길까지 육지에서 온 경찰들이 다 막지는 못했다. 우리는 꾸역꾸역 중덕삼거리로 모였고 동이트기 전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우리는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고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방패와 군화로 무장한 공권력에 우리는 그냥 맨몸으로 맞설 수밖에는 없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 포크레인 위로 올라갔고 평화활동가들은 공사 트럭 바퀴 앞으로 몸을 날려 막아섰다.
경찰은 점점 강력한 물리력으로 우리를 몰아붙였고 우리는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결국 어이없게도 50여 명이 연행되고 순식간에 울타리가 쳐졌다. 그 날 이후 걸어서 구럼비로 가는 길은 모두 봉쇄되었다. 다음날 평화콘서트를 위해 육지와 제주 각지에서 강정으로 모여든 4천여 명의 참가자들은 결국 아무도 구럼비 너럭바위와 강정 앞바다를 보지 못했다. 결국 9월 2일 경찰과 몸싸움을 한 사람들이 구럼비 앞바다의 마지막 목격자들이 되고 말았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이 그냥 동네 앞바다인 평화로운 마을, 1Km 넘게 해변가를 따라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던 너럭바위 '구럼비'와 수백 년 동안 마을 주민들의 희노애락과 함께 했던 바위틈 용천수 '할망물'은 강정의 자랑이고 상징이었다. 천연기념물 442호 '연산호군락'이 바닷속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붉은발 말똥게'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작은 마을, 은어가 살고 있는 서귀포시민들의 식수원 1급수 강정천이 흐르고,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7코스가 해변을 따라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곳.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고요하며 제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던 '일강정'이, 이제는 해군기지의 마을이 되어 버렸다.
생명과 평화가 철저하게 무시된 곳, 민주주의와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힌 곳, 국가공권력과 건설자본이 공모하여 거짓 안보를 내세우며 국민의 정당한 권리와 간절한 바람을 결국 꺾어 무너뜨린 곳, 강정은 이제 파괴의 상징처럼 피투성이가 되었다.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가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주민들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겨우 87명의 주민들이 조용히 모여 박수를 치며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했다는 주민투표의 결과가 유일한 근거인 이 초대형 국책사업은 정부와 해군 그리고 안보장사로 명맥을 유지해 온 수구 언론들의 합작품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시작부터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그 상처로 자존감마저 무너져 버렸다.
34억 4천여만 원의 구상권 청구, 말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