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하지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란 '몇 가지 특수한 사례로 일반화된 결론에 성급하게 도달하려는 오류'를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여성을 표적 살해한 범죄자 한 명이 나타났다고 나머지 남성들까지 여성을 표적 살해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처럼 공포스러워하는 건 논리적인 오류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건 사실 논리학을 끌어들일 문제도 아니고, 국어만 제대로 이해하면 기분 나빠할 이유도 없는 문제다. '잠재'라는 게 무슨 뜻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은 상태로 존재함'을 뜻한다. '인간성'은 악한 충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통제하는 선한 마음을 통해 보완되면서 사회적으로 성숙한다. 그렇다고 악한 충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악한 충동이 평생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악한 충동이 겉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고 작고의 문제일 뿐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인' 가해자다.
이렇게 말하면 꼭 논점을 이탈시키려는 남성들이 나타난다. 가령 '그렇다면 여성도 낙태를 통한 태아 살인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냐'는 식이다. 이런 식의 시도는 최소한 두 가지 논리적 오류에 빠진다. 첫째는 '잘못된 유비추론의 오류'다. '자신의 논증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교하는 대상의 중요한 차이점은 간과하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유사성만을 강조하는 오류'를 뜻한다. 낙태 문제는 응용윤리학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몇 개월부터 '태아'로 인정할지, 낙태가 왜 비윤리적인 행위인지 규범윤리학적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 성공해도 왜 낙태 문제에서 잠재적 가해자를 이야기하는데 굳이 '성별'을 강조해야 하는지도 증명해야 한다. 낙태 문제에서 '여성'을 굳이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낙태는 미혼모 낙태일지라도 맥락을 따져보면 여성의 개인 선택으로만 환원하기에는 남성의 책임도 상당히 수반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피장파장의 오류'다.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오류'를 뜻한다. 설사 낙태가 비윤리적이고 여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볼 근거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다른 문제에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볼 근거까지 무력화시키는 건 아니다. 지금 당장의 논점은 낙태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향한 신체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수준 낮은' 오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왜 나를 갖고 그래? 너네도 잘못하잖아!' 수준의 논리를 어린이도 아닌 성인들이 쓰는 셈이다.
핵심은 인간은 모두가 잠재적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지만 '특별히 특정 성별을 '잠재적 가해자'로 강조하는 일이 무의미한 일이 아닐 때가 언제냐'다. 경찰청 범죄 통계를 보정하면 여성은 강력범죄와 상해·폭행 범죄라는 신체적 위협 상황에 처하면 '가해자'보다 '피해자'일 경우가 남성보다 약 16.6배, 성범죄를 제외해도 4.46배 높다. 범죄자의 85.99%가 남성임을 감안하면 여성이 주로 피해자일 때 남성은 가해자다(☞관련 기사:
경찰청 통계 군더더기 잘라내면, 여성 '공포' 이해돼).
이렇게까지 이야기해도 '범죄자라는 소집단을 갖고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반문하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성급하다'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성급하다'는 사실판단이 아니라 엄연히 가치판단이다. 그것은 사회규범적인 성격을 갖는다.
어떤 현상이 '과학적 발견'으로 인정되기까지는 '매우 보수적인 기준이 선택'된다. 과학자들은 같은 조건에서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때 이를 '재현성이 있다'고 말한다.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중력파 검출 성공 때, 통념적으로 과학적 발견을 인정하는 기준인 5시그마(350만 번 중 1번 오류가 날 확률)를 넘긴 5.1시그마가 인정되었다. 한편 사회과학 분야는 연구 대상인 사회가 실험실이 아니며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많아, 우스갯소리로 3시그마만 돼도 '꿈의 재현성'이라고 부를 정도로 관대한 기준을 선택한다.
하물며 과학적 탐구도 아닌 일상에서 신체적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본능인 '공포'를 발동시키는 여성에게는 대체 어떤 원칙을 갖고 '성급하다'고 재단할 건가. '성급하다'는 가치판단에도 엄연히 원칙이 필요하다. 현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용어의 오남용은 여성에게 시급한 '의심의 이득의 원칙'을 무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