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 '가고파 거리'의 이은상 안내판.
윤성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까지 '친독재' 행적 뚜렷이은상은 누구인가. 그는 창신학교 고등과를 나와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수업했고, 일제 강점기 때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와 동아일보 기자 등을 지냈다. 그는 광복 후 이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장,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은상은 '친독재' 전력이 뚜렷하다. 박정희정권 때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1955년 이승만 80회 생일 때 '송가(頌歌)'라는 제목의 경축시를 발표했다.
이은상은 1960년 이승만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났던 3·15의거와 김주열 열사의 시신 발견 뒤 일어났던 4·11민주항쟁을 폄훼했다. 그는 <조선일보>(1940년 4월 15일)와 인터뷰에서 3·15의거에 대해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로 매도했다.
또 이은상은 박정희정권의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작성했고, 1972년 10월 '청우회' 중앙본부 회장으로 있으면서 '유신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1975년 5월 13일,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 악법이라 하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고 며칠 뒤 '총력안보 서울시협의회'가 창립되었을 때 회장을 맡았다.
전두환과 관련해 1980년 '강력한 지도자는 국민의 동반자다'는 글을 썼고, 전두환정권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있었다. 전두환정권은 1982년 9월 18일 그가 사망하자,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했으며,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돝섬, 마산여객터미널 정원에도 시비탑이은상 시비는 마산에만 8곳에 있다. 이은상 시조 "가고파"와 "옛동산에 올라"가 새겨져 있다. 마산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돝섬에는 '가고파'가 새겨진 탑이 있다.
마산여객터미널 정원에 있는 시비탑에는 "가고파"가 새겨져 있다. '자생회'와 '대호건설'이 기증한 것으로 되어 있고, 뒷면에는 '밝아오는 마산항'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시비탑에서 보면 지금은 마산만 신도시 조성을 위한 매립공사가 진행되어, 마산만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