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돌리마을이렇게 평화로운 우리마을은 양지편 마을이라고도 한다. 하루 종일 해가 잘 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 시골다운 마을이다.
송상호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였다. '지급정지 명령'을 받은 우리 마을 측에서 원청업체에게 공사잔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면 되었을 텐데, 지불하고 말았던 거다. 이에 하청업체는 그 책임을 우리 마을에 물어 뭔가를 건져보려고 계속해서 집적대고 있었던 거다.
2008년에 공사하고 생긴 사태가 2011년까지 해결되지 않고 마을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었던 거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 달지?
궁리한 끝에 사무실에선 "변호사를 사야겠다"고 작정했다. 우리 마을의 짧은 법적 소견을 가지고 하청업체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했다. 상대방 하청업체는 변호사를 고용해 체계적으로 우리 마을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문제는 변호사 비용이다. 알아보니 최소 450만원이란다. 참 난감한 일이다. 마을에서 450만원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차라리 개인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면, 본인이 빚을 내서라도 변호사를 고용하겠지만, 마을 공동의 일이니 누가 그 비용을 낸단 말인가. 더군다나 체험관을 짓는 문제로 그 일이 벌어졌으니 난감했다.
어쨌든 이걸 두고 진퇴양난이라 하겠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청업체가 결국 우리 마을 체험관을 집어 삼킬 것이고, 변호사를 사자니 승산이 보장되지도 않은 싸움에 450만원이란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거다.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주머니를 열어야 했다.
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체험관에 모인 마을 분들의 얼굴이 어둡다. 무슨 이유로 이 회의가 소집된 줄 알기 때문이다. 사무실 측 호소는 이랬다.
"승산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체험관을 넘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두고두고 우리 마을의 치욕이 될 것이다. 되든 안 되든 한 번 부딪쳐보자". 이런 설득을 하고 또 했다. 하지만, 회의는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서로 눈치만 보는 상태였다. 갑갑했다.
노인회 총무님이 일촉즉발 상황에 물꼬를 트다이때, 우리 마을 한 어르신이 회의장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하이고, 이제 회의고 뭐고 끝났다' 싶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이 나가면서 현 위원장을 불렀다. 바깥으로 나간 위원장과 어르신이 좀 있다가 사무장인 나도 불렀다. 나갔다. 그 어르신이 말했다. 그 어르신은 마을 노인회 총무였다.
"사무장 말여. 우리 노인회에서 100만원 먼저 낼 텡게 좀 더 힘써봐." 순간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막막한 벽 사이로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듯 했다. 희망의 불씨를 잘 살리는 일만 남았다. 다시 마을 회의에 임했다. "마을 노인회에서 100만원 내겠다고 한다"며 공표하고, 다시 호소에 들어갔다. 그 말이 공표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렇다면 마을 총회에서도 100만원, 부녀회에서 50만원, 당시 위원장 50만원, 현 위원장 50만원, 현 사무장 50만원, 마을어르신 두 분 50만원."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었다. 좀 전에 갑갑했던 분위기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이런 분위기가 기쁘면서도, 순간 두려웠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패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변호사 비용은 해결됐지만, 만일 패소한다면........그 후 변호사를 통해 우리 마을도 법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문제의 핵심을 찾았다. 하청업체가 승소한 법원에서 날린 '지급정지 명령서'가 우리 마을에 도착한 시점과 우리 마을 전임 사무장이 공사잔금을 송금한 시점 중 어느 것이 더 빠르냐의 문제였다.
만일 지급정지명령서가 송금시점보다 빨랐다면, 그걸 알고 지급한 우리 마을의 책임이다. 역으로 지급정지명령서가 송금시점보다 느렸다면, 지급정지 명령을 모르고 송금했으니, 우리 마을에 책임이 없어진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밝히는 가다.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마을이 승소를 했다. 어떻게. 단 30초 차이로 말이다. 우리 측 변호사가 알아낸 사실은 바로 이랬다. 우리 마을 전임 사무장이 농협 CD기를 통해 원청업체에게 송금한 시간이 오후 5 시 35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송금이 완료된 시간이었다. 전임 사무장이 약 4천만 원의 공사잔금을 몇 번에 걸쳐 나누어 송금하다가 마지막으로 송금이 완결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