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 개도 풀을 뜯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114] 심심하거나 영양보충 구토 위해 일부러 풀 먹을 수 있어

등록 2016.05.23 12:02수정 2016.05.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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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맞는 표현일까, 아닐까.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맞는 표현일까, 아닐까. freeimages

"여보, 아니 우리 강아지가 풀을 뜯어 먹네요!"

잔디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사는 50대 주부 C씨는 최근 애완견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난생 처음 목격했다. 그는 8년 전 시골집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개를 여러 마리 키워왔다. 하지만 모두 마당 한 켠에 묶어서 기르는 덩치가 큰 개들이었다. 그러다가 달포 전 지인으로부터 어른 주먹 2개 크기의 소형 애완견을 얻어 집 안에서 길러왔는데, 최근 날씨가 따뜻해져 마당에 풀어놓자 잔디를 씹어 먹는 것이었다.

"개는 육식을 훨씬 선호하지 않나요? 밥을 줘도 먹긴 하지만 고기를 줄 때 꼬리를 더 신나게 흔드는 걸 보면 육식성에 가까운 거 같던데."

강아지가 생풀을 먹는다는 자체가 C씨에게는 작은 놀라움이고 신기함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개들을 오랫동안 길러 본 사람들이라면 개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한두 번쯤 구경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주 흔한 일은 아니지만,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개가 풀은 물론이고 꽃을 따서 씹는 등의 행동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속된 말 가운데 '개 풀 뜯는 소리'라는 표현이 있다. 가당치 않거나 논리가 서지 않는 주장 등을 폄하할 때 쓰는 말이다. 헌데 '정상'인 개도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표현 자체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개의 초식, 그 것도 살아 있는 풀이나 꽃 같은 걸 먹는 생식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갈리지만, 정상이라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주는 대략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기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이나 일부 동물 가운데는 먹어서는 안 되는 혹은 평소 전혀 먹지 않는 것들을 입에 넣어 삼키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종이나 크레파스를 씹어 삼키는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이를 '이식증'(Pica)이라 하는데, 당연히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개가 풀을 뜯어 삼키는 건 이식증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보는 수의사나 가축학자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이다.

개의 이식증에 대한 대규모 조사연구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 혹은 개를 오래 키워본 사람들의 경험 등을 토대로 추정하면 개가 풀 뜯는 행동은 정상일 수 있다. 수의사 등에 따르면, 개가 풀을 뜯는 이유로는 대략 3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운동이 부족하거나 주인이 놀아주는 시간이 적은 등의 상황, 즉 심심할 때 야외에 풀어 놓으면 풀을 뜯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섬유질 무기질이 부족한 사료 등을 주로 먹었을 때 영양 불균형을 해소하려 풀을 입에 갖다 댈 수도 있다. 또 하나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먹었다든지 기생충이 있을 경우 구토를 유발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풀을 뜯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풀을 뜯어 먹은 뒤 별다른 이상 행동 등이 관찰되지 않는다면, 동물병원 등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풀을 뜯어 삼킨 뒤 토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면, 다른 질환이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큰 문제가 없다면 애완견을 야외에 풀어 놓았을 때 풀을 뜯는 걸 구태여 말릴 필요는 없다. 다만 제초제 성분 등이 잔류돼 있을 수 있는 풀을 뜯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개가 풀을 뜯는 건 최소한 개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당찮은 일은 아니므로 놀라거나 터무니 없다는 식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개 #풀 #이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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