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해줬던데 검토를 해보고 드릴 말씀이 있으면 알려드리겠다."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른바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국회는 지난 19일 '국회 상임위가 법률안 이외에 중요한 안건의 심사나 소관 현안의 조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청문회를 상시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정 대변인을 향해 "언제쯤 검토가 완료되느냐", "아직 입장이 정리 안 됐나" 등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검토를 해보고 드릴 말씀이 있으면 드리겠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지만 확실히 답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청와대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상시 청문회법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은 분명한데 그를 관철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현실이 그대로 묻어난 것이다.
'유승민 축출' 성공했던 예전 같지 않은 상황, 집안 단속도 힘들다청와대는 이를 '행정부 마비법'이라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현안마다 상임위 차원에서 청문회를 개최할 경우, 공무원이 어떻게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겠는가, 입법부의 권한이 너무 비대해지고 행정부는 거의 마비 상황에 올 수 있는 법", "정쟁의 목적으로 청문회를 활용할 경우 정부 입장에서는 행정력에 마비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실제로 20대 국회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재편된 만큼, '소관 현안의 조사'는 큰 저항 없이 매번 이뤄질 수 있다. 지금만 하더라도 야권은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청문회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 배후설이 불거진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나 법조비리의혹 사건인 정운호 게이트 등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까지 벼르고 있다.
이 같은 야권의 '계획'을 실현할 상시 청문회법을 청와대에서 '행정부 마비법'이라고 규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셈이다. 특히 청와대는 '모법(母法)의 취지를 위배한 시행령의 수정을 권고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이미 한 차례 "삼권분립 위배"라고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그때와 같은 취지의 법안을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할 리가 만무한 셈이다.
결국, 어떻게 거부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현재 청와대가 가진 유일한 카드는 '대통령 거부권'이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돼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도록 돼 있다. 이때 대통령은 해당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같은 기간 내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이를 행사했고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었다. 새누리당도 대통령의 뜻을 적극적으로 따랐다. 결국 유 원내대표는 자리를 내놓았고 새누리당은 당시 본회의를 불참하면서 이를 부결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상황을 재현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 참패하면서 국정 동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여론조사 업체 '한국갤럽'이 이날 발표한 5월 3주차 정례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p 하락한 30%밖에 안 됐다.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최저 수준인 29%를 기록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 이유로는 '소통 미흡/너무 비공개/ 투명하지 않다(24%)'가 1순위로 꼽혔다.(17~19일 전국 성인남녀 1004명 전화조사원 인터뷰,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즉,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와의 전면전을 선포한다면 민심이 더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의 상황도 과거와 다르다. 당 원내지도부가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상시 청문회법 처리 당시 비박(비박근혜) 의원과 탈당파 무소속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새누리당에서 제출한 수정안에 찬성한 의원도 고작 7명에 불과했다. '박심(박 대통령의 의중)'에 민감하게 집결하던 과거의 모습과 차이가 있는 셈이다.
19대 법안을 20대서 재논의? 법적 논란마저 감수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