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인, 또 하나의 초상 - 일상 시리즈 중에서
이재갑
1. 역사를 공유하는 방식 사진가 이재갑의 아픈 역사에 대한 작업은 논리적으로 매우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이 땅에 미국이 주둔하며 생겨난 혼혈인들에 대한 사진 작업으로 전쟁의 아픈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혼혈인'으로 출발한 그의 아픈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기원을 찾는 방향으로 가면서 경산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과 일제강점기 그들이 이 땅에 남기고 간 건축물 유산에 대한 작업과 일본 내 흩어져 있는 조선인 강제 연행과 관련된 유산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전쟁으로 간다. 그는 역사를 말하되 아픈 역사를 말하고, 아픈 역사를 말하되 그것이 남기고 간 유산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 유산이라는 것은 여러 역사가 이질적으로 섞여 있는 것들이다. 그것을 국가가 정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잊어라 해서 잊히는 것도 아니다. 이재갑이 사진으로 역사를 말하는 방식은 그 아픈 역사에 담긴 중첩과 이질의 여러 면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사진가 이재갑이 그리는 아픈 역사는 항상 두 개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의 '혼혈인'은 국가가 자유를 수호했다는 '국민'이 갖는 시선이 가려버리는 또 하나의 다른 시선을 말하고자 한다. 미군이 공산당 빨갱이들의 침략을 지켜내는 은혜를 베풀어주었다는 국가 중심의 거시사에 던지는 의문이다.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 관한 두 개의 시선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작품,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남의 나라 민간인을 몰살한 것에 대해 이쪽에서는 영웅으로 기념을 하고, 저쪽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증오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개의 시선은 반드시 특정한 시선 둘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정된 둘이 아닌 드러나지 않은 여럿을 의미한다. 그것이 '혼혈인'에 관한 것일 때는 그들을 비정상 존재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는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된 그 피해자들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