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옥바라지골목 현장을 직접 방문해 담당 간부에게 공사 중단을 지시하고 있다.
김경년
"서울시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이 공사는 없다. 내가 손해배상 당해도 좋다."지난 17일 오전 옥바라지골목에 갑자기 나타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잔뜩 화난 얼굴로 담당 국장을 질책한 뒤 자리를 떠나버렸다. 현장은 재개발 반대주민과 사회단체 회원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고 박 시장은 인터넷과 SNS에서 약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럼, 박 시장은 이날 왜 그리 화가 났을까.
이날 오전 6시 30분경 옥바라지골목에 마지막 남은 여관인 '구본장'에 100여명의 용역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며칠 전 명도소송에서 이긴 재개발조합측이 철거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은 여관 주인가족은 물론, 투숙객들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여관에 머무르고 있던 사회단체 회원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항의하며 다시 들어가려는 이들에게 소화기를 분사하며 접근하지 못하게 했고,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내부 집기를 들어내고 유리창을 마구 부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쫓겨난 사람들이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시장도 SNS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뒤 일정을 바꿔 급히 현장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도착한 박 시장은 용역직원들에게 "여기 책임자가 누구냐, 빨리 철수해, 시장 말 안 들려요"라며 호통을 친 뒤 구본장 주인 등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보란듯 '공사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서울시 한 고위 관계자는 "박 시장이 건설업체나 재개발조합측이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행태를 보인데 대해 분노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은 마침 오후에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 관계자들과 박 시장의 면담이 예정돼있었다. 막바지에 몰린 대책위 주민들이 며칠 전 한 행사장에 들어서는 박 시장을 붙잡고 애원해 얻은 면담기회였다.
서울시측은 조합측이 이날 면담 정보를 미리 알고 일부러 철거를 강행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내가 오늘 (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기로 돼있었는데 아침에 이렇게 (철거)하면 이건 예의도 아니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