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정치만 좇다간 권력의 노예로 전락

아들에게 선물한 김영수 교수의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등록 2016.06.07 14:48수정 2016.06.07 14:48
1
원고료로 응원
아프리카 정치사가 주 전공인 김영수 교수(경상대 사회과학원 학술연구교수)의 새 책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알렙 펴냄)에는 국가의 권한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권리를 최대화하는 민주국가의 상상적 대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부터 던집니다. 당신은 권리와 권력과 권한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느냐고. 아프리카 변혁운동과 조합운동에서 실마리를 찾고, 한국 민주주의의 실천 현장에서의 활동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상상의 대안을 던집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대한국민" 헌법으로 바꾸자고. 이제 제안에 대한 화답으로 인권보호관,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서평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제20대 국회가 개원했다. 총선의 결과보다, 항상 그렇듯 선거 기간 동안 어느 후보자가 우리 지역을 개발하고 산업을 활성화시켜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줄 것인가에 집중했던 지역 유권자들의 모습에 심란해하고 있었다. 후보자들 모두가 하나같이 지역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지만, 누가 봐도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불필요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이런 심정을 위로하고 국민이 정치와 권리의 주체임을 다잡게 하는 책을 뜻밖에 발견하였다.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김영수 교수의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였다. 제목을 접했을 때 느낌은 비민주적인 작금의 정치 현상을 비판적으로 구성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책 표지를 여는 순간 저자의 미혹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겉표지.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겉표지.알렙
저자는 철학과 역사와 법, 그리고 정치를 통섭적으로 엮어내면서 '인민의 자존감'과 '삶의 정치'를 연결시켰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으로 결합시켰다는 판단이 들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천편일률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길 바라는 애비의 과감한 선택이었다.

저자는 삶 속에 투영되어 있는 민주주의의 이중성, 특히 국가 중심의 민주주의가 인민 중심의 민주주의를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배반했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인민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저자의 다의적인 측면까지 좇아가야 하는 책의 구성과 의미 때문에 기존의 지식과 상식까지 흔들리는 독해의 괴로움에 빠지기도 했지만, '민주주의 정치는 국민에게 삶의 자존감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 한 마디가 책의 전체 내용을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정치란 돈으로 등치될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국민이 정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돈에 대한 비굴함을 극복하기 위한 주권자의 자기 노력을 전제로 한다. 비굴하더라도 정치가 돈만 갖다 준다면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국민은 정치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사실 우리가 정치권력에 기대하는 돈이라는 것은 우리의 땀과 노력의 성과이다. 그런데 그 주인은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려 정치 권력에게 자신의 성과를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삶에 필요한 돈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권력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상상력을 책의 구석구석에서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현존하는 권력 체제나 국가가 저자의 상상적 정책 대안들을 '손톱에 낀 때' 정도로 취급할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그것들을 실현할 주체를 '인민 정치'에서 찾고 있는데, 삶 속의 인민들은 돈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고, 그 프레임에 갇혀서 비굴한 선택의 자부심만을 고집하고 있다.

저자도 인민들의 양면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정치적 주체화를 위한 과제를 인민들의 몫으로 남기고 있는데, 그 무게감 때문에 인민들의 어깨가 으스러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저자가 앞으로 완성해야 할 빈공간이라 여기면서도 뭔가가 비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아마도 인민의 '자기 의식'과 '자기 통치'를 강조하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민을 교화시키고 계몽시키려는 것 자체부터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최초의 사회계약 속에서도 인민의 자기 권리를 찾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투쟁할 자연적 권리가 있다.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다.

따라서 개인과 계약을 맺은 국가는 개인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의무만을 수행해야지, 그 의무를 방기하는 불량스러운 공동체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개인은 불량 국가에 대해 언제든 계약을 파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는 꼭 사회계약론의 인민을 매개로 루소를 부활시킨 느낌이었다. 저자가 인용한 루소의 말이다.

"국가와 권력에 대한 인민의 복종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인민들이 자유를 잃게 된다면, 복종하지 않는 것이 더욱 좋다.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혁명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자유를 약탈하는 것은 우선 정당한 것이 아니다. 힘 자체가 정당한 것이라면,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힘도 정당하다."

루소는 인민이 주권자이고 주권자가 자유를 잃어버리면 정당한 혁명을 통해 자유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인민들을 근대의 주체로 나서게 하였다. 책의 행간을 지배하고 있는 저자의 가치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의도 역시 또 다른 선험적 규정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민들은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정치적 주체로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주체로서 사는 것이 행복의 본질적 요소이지만 현실은 우리가 주인 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국가 권력은 과연 인민들 자신의 국가 권력일까? 자신이 국가 권력의 주인이 될 때, 인민들 스스로 그 권력에 조응하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정치의 격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상호 조응적일 때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바로 인민의 자기 통치다.

우리에게 삶의 자존감을 부여하는 민주 정치는 어떻게 해야 가능한 것일까? 정치의 기본기는 무엇일까? 우선 호기심과 상상력이 넘쳐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절대적 진리로 알고 있는 것들에 물음표를 붙이며 스스로 답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이 책은 필요한 기본기를 알려줄 것이다. 저자의 책을 선물받은 내 아이가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민주주의를 상상하며 새로운 민주국가의 주권자가 되길 바란다.

당신은 민주 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김영수 지음,
알렙, 2016


#민주주의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김영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이 기자의 최신기사 'F 학점' 받은 국가교육위원회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