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이든 나그네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아이들.
양학용
그 사이 진실, 아라, 수경이 지나갔다. 그들 역시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얼굴들이다. 두 명의 거북이. 우현과 유진을 데리고 가는 나도 힘이 부칠 즈음 오늘밤 캠핑 예정 마을이었던 힌주(Hinju)에 도착했다. 꼬마 넷이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모으고 달려왔다. 세계 어느 마을이든 제일 먼저 낯선 냄새를 감지하고 이방인을 맞아주는 이들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하우아유? 왓쥬어네임?(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예요?)" 소남, 돌마, 앙모, 남겔. 알고 있는 두 마디 영어를 한꺼번에 쏟아내곤 머루 같은 눈만 깜박이고 섰던 그 꼬마들의 이름이다. 얼마 전 페이 마을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웃고 놀다 이틀 전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던 이름들이기도 하다. 라다크 사람들의 이름은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생각하며, 동네 꼬마들을 앞세우고 마을 끝자락에 있던 캠핑장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의 트레킹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캠핑장에는 텐트가 없었다. 앞질러갔던 진실, 아라, 수경, 정호만이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말로는 마을 끝까지 가보았지만 다른 캠핑장은 없다고 했다. 나는 지친 몸으로 마을 초입까지 다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우리들이 캠핑장을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어디에도 다른 캠핑장은 없었다.
할 수 없이 마을을 지나 계속 걷기로 한다. 하필 이럴 때에 갈림길이 나오는 것은 꼭 영화나 소설에서 본 장면 같았다. 한쪽 길을 선택하여 걷다가 길을 찾지 못해 두 길 사이를 왔다 갔다 헤매는 동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들의 체력은 방전되어 갔고, 해마저 설산 너머로 귀가하려는 중이었다.
그때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 한 분이 산에서 내려오시며 당나귀 10여 마리와 한국 사람들이 저 산 너머에서 캠핑을 하고 있다고 일러주었다.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날 밤 우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마지막 힘을 짜내며 10시간 만에 도착한 캠핑장은 정말이지 화가 날만큼 아름다웠다.
"진실이, 여기서 돌려보내야 해요... 더 이상은 위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