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나무를 심다> 책표지.
북촌
<정조, 나무를 심다>(북촌 펴냄)는 우리에게 개혁군주, 문화군주로 많이 알려진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1752~1800)를 '식목왕 정조'로 만나게 하는 책이다.
책에 의하면 정조가 1789년부터 7년 동안 현륭원에 심은 나무만 1200만 그루. 그런데 재위(1776~1800년) 첫해부터 죽은 해까지, 조선 전역에 숲이 출렁이도록 얼마나 많은 나무들을 심고 가꾸었는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정조가 현륭원(사도세자의 묘.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한 이후 융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이나 현륭원 일대, 용주사 일대 등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버드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재위 15년째인 1791년. 그해 1571주를 시작으로 몇 년에 걸쳐 수차례, 버드나무를 심고 가꾸게 했다고 한다. 제방을 쌓은 곳에도 심게 했다.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었다.
정조가 왕이 된 후 사도세자의 무덤을 정비했다는 사실은, 그 과정에서 많은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지라 정조가 많은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은 그리 신선하게까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버드나무였을까? 그 이유와 버드나무를 심게 된 계기를 읽으니 자못 감동스럽다.
어느 해 동지정사(동지 인사를 하고자 중국에 보낸 사절단)로 북경(청나라)에 다녀온 연행사가 정조에게 보고한다. '강희제(청의 4대 황제, 재위는 1661~1722년)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수 천리에 달하는 길에 버드나무를 가로수로 심게 한 덕분에 산 속에는 도적이 없고, 마을에는 싸움도 없었으며, 풍속이 좋아 사람들의 삶이 편안했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10년 뒤인 1790년 6월, 그러니까 정조 재위 14년에 다녀온 연행사 일행도 '강희제에 이어 옹정제가 여러 차례 심은 버드나무 덕분에 백성들의 삶이 평안했다. 땔감이 부족한 곳에서는 고목이 된 버드나무를 한해 걸러 베어다 쓰게 하고, 베어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계속해서 숲을 이루게 한다'와 같은 보고를 한다.
정조가 버드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연행사가 돌아온 그 이듬해. 아마도 정조가 버드나무를 심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청나라의 황금기인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치세처럼 조선도 부흥하기를 바라면서가 아니었을까? 강희제와 옹정제가 심은 버드나무의 혜택을 누리는 청나라 백성들처럼 조선의 백성들 또한 그처럼 자자손손 나무의 혜택을 누리길 바라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