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출하고 정갈하며 맛깔난 동문주막 밥상(추어탕).
김종성
전남 강진읍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꼬르륵 거리는 배를 달래며 가까운 강진군청 옆에 있는 '사의재(四宜齋,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로 갔다. 강진읍엔 갖가지 맛집들이 수두룩하지만 사의재 안에 있는 작은 밥집 동문주막은 여행자에게 잊기 힘든 곳으로 남는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온 후 처음 묵었던 주막집으로 당시 이름은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막집 주인 할머니가 내어준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이 사의재다.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네 가지는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과묵한 말씨·신중한 행동. 다산은 주막집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모녀의 따스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다산이 강진에서 집필한 귀중한 책들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의재엔 강진군에서 운영하는 한옥 민박집도 딸려있다.
밥집을 혼자 운영하다보니 밥값(5천 원)을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는 아주머니는 강진에서 25년 동안 식당을 했단다. 주모의 능숙하고도 고된 노동이 서려있는 고마운 밥 한 끼, 입에 착착 달라붙으면서도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거지꼴로 유배왔을 정약용을 보살펴주었던 주모처럼 정다웠다. 자칫 음식 낭비를 부르기 쉬운 상다리 부러지게 나오는 한정식보단 이렇게 소수정예의 밥상이 더 좋다.
다산 선생이 즐겨먹었다는 아욱국, 칼칼하면서도 부드러웠던 추어탕,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한 매생이전 등 단출하고 정갈하고 맛깔난 음식에 착한 가격까지...너무 좋았다. 고려청자와 옹기의 고장답게 밥과 찬이 담긴 청자색 옹골진 그릇도 맘에 들어 구입처를 물어보기도 했다.
아욱은 '국을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살이 쪄서) 외짝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가을 아욱국은 (맛이 너무 좋아)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는 한 해 살이 풀로, 다산 선생은 건강을 위한 보양식으로 아욱국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욱은 시금치보다 단백질이 두 배, 지방은 세배가 많으며 무기질과 칼슘함량도 높단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아욱은 다산의 시구에도 나온다. "집 앞 남새(나물)밭의 이슬 젖은 아욱을 아침에 꺾고, 동쪽 골짜기의 누런 기장을 밤에 찧는다"
푸근하고 풍성한 강진읍, 강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