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시토울라 어머니
최오균
어머님은 이 신전에서 아침 저녁은 물론 수시로 푸자(pooja, 기도의식)를 올린다고 한다. 특히 멀리 한국에 있는 아들 시토울라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드리신다고 한다. 20년 넘게 아들과 떨어져 있다 보니 늘 아들의 건강과 안전이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어머니들의 마음은 다 똑 같다.
나는 시토울라의 어머님 속에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님을 본다. 한국전쟁 당시 큰 형님이 군대에 계실 때 우리 어머님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올렸다. 들 샘에서 물을 길러와 사발로 한 그릇 지푸라기 위에 떠놓고 어머니는 신령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과 조상님께 비나이다. 우리아들 꼭 살아오게 해주소서!" 어머님은 매일 목욕재계하시고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곱게 감으시고 참으로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셨다.
그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큰 형님은 정말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셨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큰 형님은 논에서 일을 하다가 16살의 소년 나이에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1955년까지 5년 동안이나 백마부대 최전선에서 전쟁에 참여했다. 큰 형님과 나는 14살 차이다. 어린 나는 큰 형님이 수십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기적처럼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님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큰 형님은 <향수>라는 타이틀을 적어놓고 5년 동안 전선일기를 썼다. 그 일기장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큰 형님은 전선에서 동상을 입는 등 골병이 들어 49세를 일기로 어머님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님은 식음을 전폐하시고 몇 날 며칠 동안 통곡을 하시며 울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세상의 어머니들 마음은 다 똑같다. 지금 시토울라 어머님의 마음이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우리 어머님의 마음이나 자식을 무한대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똑같다. 나라마다 기도의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마음은 다 똑같은 마음이다. 우리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가신 지도 3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생전의 어머님을 뵌 지 바로 어제 같은데 머지않아 나는 어머님께서 살아가신 세월만큼이나 살게 된다. 지금도 어머니 사진 앞에 앉아 가끔 "어머니!" 하고 마음속으로 불러 본다.
어머니보다 아무 조건없이 사랑을 주시는 분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어머님을 생각하면 잘 해드리지 못한 불효 막급한 일만 떠오른다. 그러니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해야 한다. 이곳 세계의 지붕하고도 카트만두에서 시토울라 모자간의 다정스러운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