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자, 손을 높이 들고 기뻐하는 이광복 화백.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그는 웃고, 웃고, 또 웃었다. 함께 모인 사람들도 덩달아 웃었다. 그가 뿜어내는 열정과 끼, 천진난만함에 매료돼서,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해서.
사과 한알에도 영혼을 담는 세계적인 화가, '이광복- 50년만의 귀향' 공주문화원 초대전이 열린 지난 4월 6일은 마침 그의 칠순 생일이었다.
기왕이면 "생일날 그림도 보여드리고, 즐겁게 해드리고, 진지도 대접해드리면 좋겠다"고 주인공인 이광복 화백이 자청한 날이란다.
그는 사과그림이 사방에 걸린 전시실 가운데서 춤을 췄다. 그리스 전통춤으로 유일한 남성독무라고 했다. 조명이 모두 꺼지고 전시장 한가운데 밝혀진 촛불 하나. 힘찬 스텝과 함께 강렬한 춤이 펼쳐졌다. 그의 표정과 손짓, 몸짓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 남겨진 것은 장남으로서의 의무 뿐. 뛰어난 재능은 15년이란 긴 세월을 동생들 뒷바라지에만 쓰여야 했다. 1982년 '창작 창조미술 대전' 입상. 세상은 그를 알아봤고, 그는 꿈을 찾아 유럽으로 떠났다. 파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런던, 플로렌스를 거쳐 정착한 아테네. 늦은 만큼 귀하게 시작된 공부는 하루 16시간씩 그림에 매달리면서도 감사한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갖도록 했다.
그의 춤사위에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의 심정을 춤으로 표현한 그리스인과 다름 없었을 가난한 한국화가의 고단한 삶이 담겼다. 그는 노래도 불렀다. 귀향을 한 뒤 다니기 시작한 노래교실에서 배운 솜씨라는데, 혼신을 다하는 그는 그 시간 가수가 됐다.
시끌벅적 덕담들이 오가고, 생일축하 노래와 케이크가 등장하고, 흥에 겨운 개장식인지라 '깜빡 잊었던' 기념테이프커팅이 한바탕 웃음과 함께 제일 마지막에야 진행됐다. 사람들은 화가가 내는 저녁식사자리로 우르르 몰려 갔다.
'세계적인 화가의 귀향'에는 어떤 권위도, 전제도, 기획도 없었다.
대가와 고향이 만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