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머니'를 요구했던 꼬마 아이의 어린 여동생.
송성영
네팔 경찰 아르준네 마을에서 사흘째. 이른 아침, 숙소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가 어린 두 남매의 손을 잡고 구멍가게에서 나오고 있었다. 녀석들의 손에 막대 사탕이 하나씩 들려 있다. 예닐곱 먹은 남자 아이는 낯이 익다.
어제 저녁 내 주변을 빙빙 돌면서 "머니, 머니" 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던 녀석이었다. 녀석이 내게 손을 내미는 순간 "노!"라며 매몰차게 거절했었다. 겁에 질린 녀석의 그 커다란 눈망울을 보는 순간, 곧바로 후회했다. 녀석이 내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지만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하다. 너한테 화난 게 아니다. 돈을 달라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다."내가 매몰차게 화를 낸 것은 녀석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이 네팔 시골 구석 저 맑은 눈망울까지 굽신거리게 했는가 싶어 공연히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녀석이 그런 내 속마음을 알 리 없었다.
나는 거듭 화를 내서 미안하다는 몸짓으로 다가갔지만 녀석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숙소 옆에 자리한 움막집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집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저녁 내내 녀석이 내 말에 상처를 입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마음 한 구석에 아프게 자리하고 있던 녀석을 이른 아침 다시 만났던 것이다.
어린 남매에게 막대 사탕을 손에 쥐어 준 젊은 엄마는 숙소로 들어서자마자 청소를 시작했고 녀석은 어린 여동생의 막대 사탕을 챙겨줘 가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녀석은 막대 사탕을 빨고 있는 어린 여동생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참새처럼 쫑알거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매몰차게 대했던 어제 저녁 일을 떠올리며 도로 건너편에 자리한 구멍가게에서 내가 먹을 빵과 함께 두 봉다리의 과자를 사들고 남매에게 다가갔다. 녀석이 어제 일 때문인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어제는 내가 정말로 미안했어."나는 녀석 앞에 과자를 건네며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내 의중을 알아챘는지 슬며시 웃으며 과자를 받아 하나를 동생에게 건넨다. 내게 고맙다는 웃음을 내보이는 것은 과자 때문만은 아닐 것이었다. 나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 들였던 것이다. 나는 녀석들 옆에 거지처럼 쪼그려 앉아 짜이를 시켜 마신 것을 잊고 우적우적 딱딱한 빵을 씹어 삼켰다.
마음의 상처는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어난다. 문득 한국을 떠나올 때 나의 두 아들에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너희들이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으면 곧바로 용서를 빌고 그 누군가가 너희들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를 빌면 곧바로 용서해라.' 인도로 떠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언처럼 당부했던 이 말은 내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비록 마음이 담긴 과자 두 봉다리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준 녀석에게 고마웠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자비를 베푼 것이 아니라 녀석이 내게 용서의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사소한 그 어떤 것이라도 자비는 누군가와 사심 없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주는 사람만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이 탁발을 통해 누군가에게 자비의 기회를 주었듯이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에게 자비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메마른 세상에는 탁발이 사라진다. 탁발하는 사람이 없으면 베푸는 사람도 없다. 탁발은 주고 받는 사람, 서로가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우리 할아버지 말을 알아들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