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으로 그려진 한무제. 중국 허베이성(하북성)의 갈석산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중국인들은 자기네 문자를 한자(漢子)라고 부른다. 또 자신들을 한족(漢族)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한(漢)이란 글자가 중국인들의 정체성을 표상하게 된 데는 한나라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기원전 206년에 세워진 한나라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문명의 토대를 구축했다. 그래서 중국 문화와 관련된 글자에 漢이 많이 들어간 것이다.
한나라가 그런 위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한무제에게 있었다. 한무제 이전만 해도 중국은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고조선과 흉노족을 비롯한 이웃나라들한테 당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랬던 중국이 강력한 국가가 된 것은 상당 부분은 한무제 덕분이었다. 한무제는 공격적인 대외정복을 통해 고조선·흉노·베트남 같은 이웃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했다. 이런 정복사업에 힘입어 중국은 동아시아 강대국의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한무제는 한나라 때는 물론이고 역대 중국에서 대대로 존경받는 황제가 될 수 있었다.
한무제의 원래 이름은 유체(劉彘)였다. 체(彘)는 '돼지'라는 뜻이다. 황족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여기서 느낄 수 있듯이, 출생 당시의 한무제는 황실 안에서 그리 귀한 인물이 아니었다.
한무제 유체는 아버지인 경제 황제의 열 번째 혹은 열한 번째 아들이었다. 그래서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기 힘들었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기 힘든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역사 무대에 데뷔해서 중국을 최강 국가로 만들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체가 왕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상당 부분은 어린아이 때 보여준 탁월한 지능 덕분이었다. 어린아이 때부터 보여준 지나칠 정도의 명석함 덕분에 정치적 후원자를 얻고, 이 때문에 황태자가 되고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유체가 한국 나이로 네 살 때였다. 송나라 때 왕명으로 편찬된 설화집인 <태평광기>에 따르면, 하루는 아버지 경제가 네 살짜리 유체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렇게 물어봤다.
"너, 천자가 되고 싶으냐?" 어린아이한테 장난삼아 황제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봤던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네 살짜리의 대답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생모가 미리 일러둔 결과이겠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너무 기막힌 답변이었다. 답변은 이랬다.
"그것은 하늘이 정하시는 것이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매일 같이 궁궐에서 폐하께 재롱을 떠는 것입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살면서 자식의 본분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아버지 경제는 '생모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겠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복된 암기의 결과라 해도 네 살짜리 입에서 나오기는 힘든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는 유체가 황제의 눈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후계 구도가 바뀌기 힘들었다. 경제의 후계자는 장남이자 황태자인 유영이었다. 그래서 유영은 유체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네 살짜리 유체의 대답은 이런 유영의 지위를 위협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다섯 살에 '정략결혼' 성사시킨 한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