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흥서원 강당
추연창
인흥서원과 문씨세거지가 현재 자리잡고 있는 땅은 본래 사찰 소유였다. 문씨세거지 입구의 밭에 남아 있는 석탑 잔재 등은 온몸으로 그 사실을 부르짖는 증거물들이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그 석탑 잔재를 보면서 옛날 이곳에 있었던 사찰이 일연 스님께서 1264년 이래 11년이나 머물면서 중창했던 인흥사라는 사실을 헤아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어쨌든 숭유억불 정책이 한창이던 조선 시대 들면서 인흥사는 양반들에게 밀려 빈사 상태에 빠졌고, 지금으로부터 대략 150여 년 전에는 문씨들이 대웅전 자리에 종택을 짓게 되었다.
인흥서원이 지금 자리에 들어선 시기는 1825년(순조25)이다. 선비들은 당시 이곳 이름이 인흥마을이라는 데 착안하여 서원에 '인흥서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외삼문인 숭봉문을 지나면 펼쳐지는 강학 공간에는 동재와 서재를 두었는데 동재는 관수란, 서재는 요산료라 불렀다.
그리고 제향 공간으로 가는 통로인 내삼문에는 추모문, 사당에는 문현사라는 현판을 걸었다. 사당 옆에는 <명심보감> 판본을 보관하는 장판각도 별도로 건립했다. 장판각이 별도로 세워져 있다는 말은 인흥서원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재가 강당 등의 건물들이 아니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37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심보감판본(明心寶鑑板本) 31매라는 사실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