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걸으며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큰 나무는 못 될 지라도 한 사람에게라도
그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조세인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3박 4일 동안 학생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꽁하게 맺힌 한을 풀었다. 지리산의 품안에서 모든 게(?) 용서가 됐다고나 할까.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들보다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은 건 당연하다. 내가 싫어하는 수학수업을 상상해보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미분, 적분을 풀고 있는 나를 떠올렸다. 그래. 이들에겐 글쓰기 수업이 그럴 수 있을 거야.
내 자신을 향해 쏘았던 화살도 거두었다. '샨티학교는 대안학교이다'를 주문처럼 되뇌었다. 무언가를 질문했을 때 "아무 생각이 없는 데요"라고 답할 때의 괴로움이여.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답답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넘어야 할 산.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글쓰기 수업에 들어갔다.
돌아온 후 수업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봄이 문제였다(봄! 너를 '문제'라고 불러서 미안하다).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하나둘씩 졸기 시작했다. 처음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졸지 않기를 부탁해' 수업이 되었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은 사람을 얼마나 졸리게 만드는가. 똘똘한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꾸벅꾸벅. 졸지 말라는 내 목소리가 허공에 떠돌았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들에게 물었다. "다른 수업 시간에도 자나요?" 다들 "네"라고 대답했다. "다행이에요. 제 수업 시간에만 자는 줄 알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학생들이 모든 수업시간에 자서 다행인 현실.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공부를 안 시킨다고, 공부를 좀 시키려고 하면 일반학교와 뭐가 다르냐고 말하는 현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좋아지면 다시 공부 욕심이 나는 현실.
이 모든 것이 대안학교의 현실이다. 글쓰기 수업 이야기가 다른 길로 흘렀다. 이 글은 나의 부끄러운 고해성사이다. 저마다 색깔은 다르겠지만 모두의 고민일지도 모른다. 글쓰기 수업을 시작할 때 순탄하고 아름답게 흘러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벽이 높다. 잠은 나른한 봄을, 무기력함은 현실을 탓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욕심과 학생들의 욕구가 만나지 못하면 학생들을 탓하다가, 결국 나를 탓하겠지.
수업을 통해 글을 잘 쓰는 학생으로 만들겠다면 나는 논술학원에 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존재'와 '존재'가 벽을 허무는 과정을 목격하고 싶다면, 누군가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싶다면 여기서 꿋꿋이 버텨야 한다. 버티는 동안 그들과 나는 부딪힐 것이고, 그럴 때마다 지겹도록 고해성사를 할지도 모르겠다.
뉴욕타임스 작가 인터뷰 <작가의 책>을 읽다가 이 시를 만났다. 나라는 존재가, 글쓰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럴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헛되이 사는 게 두려워진다.
내가 만약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멈추게 할 수 있다면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혹은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공유하기
"수업 안 들을 거면 나가" 내 밑바닥이 드러났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