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곡성장돌뱅이 노랫말에 곡성은 곡소리 나는 곡성으로 풀어내지만 곡성은 곡소리 날 리 없는 살기 좋은 ‘희망 곡성’이다. 곡성은 옥과, 곡성, 죽곡, 석곡 등 서너 마을이 얼굴마담 노릇하는데 석곡(돌실)은 그 중에 하나다.
김정봉
이름이 알려주듯 곡성은 골짜기 많은 고을이다. 골짜기 주름 따라 골골이 들어선 서너 마을이 곡성의 '얼굴마담' 노릇을 한다. 조선시대 현(縣)이고 대한제국 때 군(郡)이었던 옥과(玉果), 현재 곡성읍 소재지 곡성, 옛날 옛적 백제의 읍이었던 죽곡(竹谷), 200년 전부터 장이 섰던 석곡(石谷)이 곡성의 얼굴들이다. 4·9장 옥과장, 3·8장 곡성장, 1·6장 죽곡장, 5·10장 석곡장, 모두 조선시대부터 장이 서, 곡성은 물론 주변 고을에까지 이름 꽤나 날린 전통장들이다.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가지 옥과(玉果)로다. (중략) 곡성(谷城)에 묻힌 선배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호남가>의 한 대목으로, 옥과는 임실과 곡성, 구례와 함께 호남가 50여 고을 중에 어엿이 한가락 차지하였다. 장돌뱅이(장돌림)들 사이에 구전되는 노래에는 석곡의 위상이 드러나 있다. 언어유희를 즐기는 노랫말로 썰렁하기보다 해학과 기지가 넘친다.
'방구통통 구례장 구린내 나서 못보고 아이고 데고 곡성장 시끄러워서 못보고 뺑뺑 돌아라 돌실장(석곡장) 어지럼병 나서 못 본다.'
돌실은 석곡의 옛 이름이다. 지금에야 구례장에 비할 바 아니지만 예전 돌실장은 장돌림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하여 곡성장과 구례장에 전혀 뒤지지 않은 장이었다.
곡성장은 시끄러워 못 본다니, 장돌림들은 곡성(谷城)을 곡소리 나는 곡성(哭聲)으로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얼핏 골짜기 고을이라 사람 살기 힘들어 곡성(哭聲)으로 들릴지 몰라도 곡성은 순창, 남원, 구례, 순천, 화순, 담양이 뱅 둘러치고 섬진강과 보성강을 끼고 있는 교통 좋고 물 좋은 고을이다. 곡소리(哭聲) 날 리 없는 살기 좋은 태평한 고을이다.
함허정 숨은 굴뚝과 군지촌정사의 기단굴뚝 남원에서 순자강(鶉子江)을 거슬러 군촌으로 향했다. 곡성사람들은 곧잘 섬진강을 순자강으로 부르곤 한다. 벚꽃은 진 지 오래, 새순이 가시처럼 돋고 있었다. 벚꽃이 만발하였다면 정(情)을 '순자'에 둘지 '벚'에 줄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을 게다. 어젯밤 비가 크게 오긴 온 모양이다. 청류는 탁류로 변해 있었다. 탁류 곁 논밭이 풍요롭게 보였다. 이제 언덕 하나만 넘으면 군촌(涒村)마을이다. 상수리 숲 언덕에 있는 정자(亭子)가 군촌을 알려줬다.
정자 이름은 함허정(涵虛亭). 중국 이화원의 '함허'처럼 하늘을 물에 담는다는 뜻인지, 무념무상(虛)에 젖는다(涵)는 뜻인지, 알 듯 모를 듯, 마음이 어지럽다. '허(虛)'를 보고 생각한 끝에 '그릇을 비움으로써 그릇으로 쓰임이 생긴다'는 노자의 '비움 철학'에 마음을 두기로 했다. 자연을 지배하고 주인행세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정자만은 비워 놓은 그릇처럼 최대한 소박하게 꾸며 하늘, 강물, 나무, 바람, 삼라만상을 담으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