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 아타 샤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2일 오후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산소호흡기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피해자(만성폐질환) 임성준(13)군과 가족 및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장을 찾아 항의하고 있다.
권우성
[기사 보강 : 2일 오후 3시 12분] "제가요, 우리 애기 한 번 잘 키워보겠다고 매일매일 가습기에다 (살균제를 넣었어요)…. 저 죽일 놈의 새X들이 만든 (살균제를요)…. 그렇게 우리 애기를 내 손으로…. 4개월 동안 서서히 죽였어요. 저도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아빠였어요."
목이 메여 말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타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아래 옥시) 대표이사가 고개를 숙였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옥시의 사과 기자회견을 찾아 "왜 이제야 사과하느냐", "영국 본사 책임자를 불러달라" 등의 항의를 쏟아냈다.
기자회견 도중 연단에 올라 거세게 항의한 피해자들은 기자회견 직후 다시 연단에 올라 "수사 면피용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대표로 마이크 앞에 선 가습기살균제피해자유가족연대의 최승운씨는 "옥시는 지난 5년 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사과를 요구해 온 피해자들의 한 맺힌 눈물을 외면하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기자간담회 형식의 사과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우리는 이 사과를 거부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씨는 "옥시의 자진 철수 및 우리 사회에서의 퇴출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백 명을 죽인 살인 기업 옥시는 전대미문의 대참사를 유발하고도 반성은 하지 않은 채, 회사법인을 해산하고, 사명을 두 번씩이나 변경하며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사건을 은폐·축소해 피해자들을 기만했다.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제품으로 사회에 위험을 가하며 온 국민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분노하고 있는 이때, 직원들은 태연히 해외 포상여행을 다녀오는 등 반인륜적인 행태를 계속하여 공분하고 있다." 또 최씨는 "우리 피해자들은 실체없는 유령이 아니다"라며 "정말 미안하다면 언론을 이용한 검찰 수사 면피용 사과가 아닌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피해자의 실수가 아니다. 죄송하다. 명백한 우리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며 피해자들인이 납득할 때까지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덧붙였다.
"사과? 죽은 아이 살릴 수 있나?"
이날 사프달 대표이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 1, 2등급 피해자 중 옥시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보상안 마련 ▲ 1, 2등급 외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 옥시의 인도적 기금 100억 원 사용 등의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사프달 대표이사는 "조속하고 공정한 보상안을 만들기 위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전문가 패널을 오는 7월까지 구성하겠다"라며 "피해자 분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최종안은 피해자 분들과 협의해 마련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또 사프달 대표이사는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회사 내부적으로도 사실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만일 잘못된 행위가 확인된다면 즉각적이고 신속한 시정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프달 대표이사의 사과에도, 피해자들은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사프달 대표이사는 "나도 아빠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사과드린다"라고 거듭 고개를 숙였으나 항의는 계속 이어졌다.
"이미 죽은 아이 살릴 수 있어요? 사과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사과하려면 처음부터 사과하셔야죠. 네? 처음부터 사과하셔야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12년째 만성폐질환을 앓고 있는 임성준(13)군의 어머니 권미애(40)씨는 "우리 아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요? 학교에 가서 피구하는 거래요"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임군은 이날 휠체어를 탄 채, 산소통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권씨와 함께 기자회견장을 찾아 사프달 대표이사 앞에 서기도 했다.
한편 이날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서울 강남구 법원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국 레킷벤키저의 최고경영자 라케쉬 카푸어 등 이사진 8명을 살인·살인교사·증거은닉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