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전체 판 정리
서형
이명박 정부 등장은 금속노조 전체판 정리를 예고했다.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옥쇄파업이 경찰에 진압되면서 완성차 업체 노동자들은 파업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2009년 10월 창원 대림자동차 노조가 무너졌고, 2010년 2월 경주에 있는 발레오만도 노조도 와해했다. 경주지역 금속노조는 연대파업을 벌였으나 노조 핵심 간부들이 바로 구속됐다. 2010년 6월 구미 KEC에서는 여성 기숙사에까지 사측이 고용한 용역이 투입돼 부분 파업에 돌입한 조합원들을 끌어냈다. 그해 8월 대구 상신브레이크, 2011년 3월 광주 금호타이어까지 노동조합 탄압이 이어졌다.
그리고 두 달 후, 5월 18일 유성기업 사태가 벌어졌다. "밤에는 잠 좀 자자"며 주야 맞교대를 주간연속 2교대제(8시간 근무)로 바꾸자는 게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였다. 이날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용역을 고용해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고 폭력을 행사했다.
직장폐쇄 이후 들어온 용역을 몰아내고 조합원이 다시 공장을 점거한 게 19일이었다. 이날 유성기업의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총괄이사가 공장 안에 있는 차를 꺼내달라며 키를 건넨다. 키를 받은 조합원은 그의 자동차 조수석에 있는 노란 봉투를 발견한다.
봉투에는 40페이지에 이르는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있었다. 불법파업 유도 후 직장폐쇄 그리고 용역 동원, 공장 봉쇄와 폭력 유발로 공권력 투입, 결국은 노조 파괴까지 이르는 내용이었다. 조합원은 이 모든 내용을 캠코더에 담았다. 노조는 또 용역 차량도 발견했다. 차량 안에는 뇌물 리스트가 적힌 수첩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30일 KBS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유성기업 사태를 거론하며 "연봉 7000만 원을 받는 근로자들의 불법파업"이라고 못 박았다. 거대 언론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썼다.
김용직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사무처장은 블로그에 "유성기업 용역깡패 동원 노조원 13명 차로 밀어붙여", "유성기업 사태의 배후 현대자동차(?)", "유성기업이 불법파업이라 공권력을 투입한다고?" 같은 글을 올렸다. 그가 쓴 글은 <중부매일> 지면에 실렸고, 트위터로 끊임없이 리트윗 됐다. 김용직을 자신의 '리스트'에 올리는 트위터 사용자들이 많아졌다. 유성기업 투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김용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