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인천시립극단 정기공연 ‘리어왕’의 팜플릿에 실린 사진.
김영숙
"지금은 예술계에서 은퇴한 친구가 많은데 '서국현 그룹'에 같이 있던 사람 중에는 영화감독, 아동극 하는 사람, 무술 고수 등이 있었어요. 1학년 때 세종문화회관 별관 무대에 아동극을 올리는데 무대감독을 맡아달라고 해 함께했죠. 그때 무대에 빠져들어 원래는 연출 쪽 일을 하려했습니다."
서씨는 1981년 극단 '미추홀'을 친구 세 명과 창단했고, 이듬해 남구 주안동 옛 인천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극단 '집현'이 연극 <리어왕>을 공연했을 때 단역을 맡았다. 그 당시 배우 최종원이 리어왕을 맡았다. 극단 '미추홀'과 '집현'은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서 수석은 '리어왕' 공연을 끝내고 입대해 1984년 제대한 뒤 인천에서 '우리문화가꾸기'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인천의 시인, 연극인, 미술인들과 인천의 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다. 시낭송이나 설치예술, 퍼포먼스 등을 했고, 동인천 중앙시장에서 '사발통문'이라는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활동하던 서 수석은 1985년, 서울 종로에 있는 마당세실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3년간 1월 1일 하루 쉬고 무대에 섰다.
"한 작품으로 보름간 공연하면 그 다음 보름은 다음 작품 연습에 매진했어요. 보름에 한 편씩 작품이 만들어지던 때였죠. 매일,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 공연하니까 힘들었지만, 실력이 많이 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연극 활동을 하는 후배들 중에 그때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신분으로 세실극장을 찾던 마니아가 많은데, 저를 봤다고 하더라고요."서씨는 그 후 서울 여의도 챔프 예술극장과 신촌 예당소극장에서 활동하다가 1991년 선배의 권유로 인천에서 사업을 했다. 그런데 1992년 말에 교통사고를 당해 장이 파열됐고, 수술 후 '사업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술한 지 한 달 만에 인천연극제 예선전에 참여했다.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라는 불교 연극이었다. '3000배를 해야겠구먼'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하고자 배우들과 수봉공원 입구에 있는 '부용사'에서 3000배를 하기도 했다.
"장파열 수술 직후라 2500배를 하다가 쓰러졌고, 나머지 500배를 선배가 대신 해줬어요. 그 공덕인지 그 선배가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멀쩡하니 회복됐어요."그 예선전에서 서 수석은 작품 대상과 남우주연상, 연출상을 받았고, 인천 대표로 전국대회에 참가해 남우주연상을 탔다.
인천시립극단을 가장 오래 지켜온 사람서 수석은 시립극단 배우 21명 중 최고령자이자 가장 오래 동안 시립극단을 지킨 사람이다.
"1993년 시립극단에서 '수전노'라는 작품 출연을 제의해 함께했고, 1994년 이승규 예술감독이 시립극단으로 온다고 해, 단원 모집에 지원했습니다. 이승규 연출가는 서울에서 극단 '가교'를 창단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1999년까지 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계셨는데, 그때 좋은 작품을 많이 했습니다."무대에선 왕도하고 장군도 해보고, 신부, 스님, 목사의 역할도 해본 서 수석은 정작 자신의 인생은 바보처럼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음이 여려 지인들의 빚보증을 서주다 힘들었던 경험도 몇 차례 했고, 미술전시회를 할 수 있는 갤러리를 마련했는데 건물 주인이 말도 안 하고 팔아 투자한 돈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 만난 작품이 2013년 <리어왕>이었다.
"중년 이상의 배우들이 가장 선망하는 작품이에요. 리어왕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합니다. 아버지로서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의 오만함으로 자식들한테 재산을 물려주고도 배신을 당해 미치광이로 떠돌잖아요. 부귀영화를 누리다 타락하는 리어왕을 다들 해보고 싶어 합니다. 열흘 공연했는데 연극이 끝나고도 거기에 빠져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어요."민간극단과 시립극단을 두루 거친 서 수석에게 어디가 나은지 물었더니, 장단점이 있단다.
"시립극단은 고정 월급이 나오니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반면, 틀에 박혀 편협해지거나 게을러질 수 있어요. 자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배우로서 안 좋죠. 이에 비해 국공립 극단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은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영화나 방송 출연 등의 기회가 옵니다. 유명한 영화배우들 중에 연극배우 출신이 많아요. 시립극단에 있던 연극인 중에도 영화배우나 방송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서 수석은 단원들이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덧붙였다. 무에타이나 수영, 무용 등, 몸 관리나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악기는 하나 이상씩 모두 배운단다.
"저도 3년 전부터 색소폰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구 등, 사물놀이도 했고요. 배우들이 무대 앞에 서는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시립극단 단원으로서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전달하려 기량을 쌓고 있습니다."예술은 사회의 청량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