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기억교실에서 답사객들이 김종천 사무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신혜연
흔적을 지우려는 자들2학년 6반. 13명이 살아 돌아오고, 25명이 희생됐다. 남현철과 박영인은 아직 바다에 있다.
그동안 단원고는 희생자 아이들이 사용하던 교실존치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김 사무국장은 "최근 뉴스를 보면, 유가족이 양보해야 한다는데 왜 늘 피해자에게 이 사회는 양보를 받아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416기억저장소와 유가족이 2015년 9월부터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피켓을 든 이유는 5가지다. 첫 번째는 '사회적 기억'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서다. 단원고 416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회적 기억이 구체적으로 보존될 수 있는 공간이다. 희생자 304명 중 250명의 단원고 학생과 12명 교사들의 빈 자리를 눈앞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4월 16일 이후 지옥을 살아가는 유가족들의 삶을 말해주는 곳이 이 교실이다.
두 번째는 세월호 참사가 아직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그 어떤 사회적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기록을 치우고 그 기억을 지우는 게 가능한가"라고 되묻는다.
세 번째는 인간에 대한 도리다. 아직 바다 속에 있는 네 아이와 두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다.
네 번째, 교육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아이들이 왜 죽었나? 한 시간 동안 12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다. 아이들은 그 방송을 믿고, 선생님을 믿고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은 아무도 상황판단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선원을 찾아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김 사무국장은 교육의 핵심목표는 생존이라고 말한다.
"나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나의 친구들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나는 어떻게 하지? 나의 인권이 짓밟힐 때, 나의 친구들 인권이 짓밟힐 때는 어떻게 하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목표가 대학에 가는 것입니까? 어떻게 대학교육의 목표가 직장에 취직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아닙니까?"다섯 번째, 민주주의를 위해서다. 김 사무국장은 "민주주의는 그 사회의 다수가 가장 고통받는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416기억교실은 유가족에게 뼈아픈 그리움을 만나는 장소다. 이 교실을 치운다는 건 그 그리움마저 빼앗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회가 가족들에게 '통 큰 결단'을 요구하더라도 유가족들은 "교실의 의미가 우리에게 무엇인지 사회가 생각해달라"고 말한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그들이 상당한 양보를 했는데도 협약식은 진행되지 못했다. 협약 당사자 중 일부가 오지 않았다. 사회적 협약은 학교 앞 도로에 '416민주시민교육원'을 짓고 교실을 이전한다는 내용이다.
2학년 7반, 1명 생존에 32명 희생. 8반, 2명 생존에 29명 희생. 9반, 2명 생존에 20명 희생. 10반 1명 생존에 20명 희생. 희생된 250명 학생과 12명 교사, 42명 일반인. 그들은 함께 살기 위해 배 안에서 침착하게 배 밖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동시대를 살던 우리는 304명의 삶과 꿈이 사라지는 모습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목격자다. 목격자는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증언하고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나면 닥칠 '기억 지우기'답사단은 416기억교실을 떠나 정부합동분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단원고 2학년 3번 24번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험받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지난 2년간 많은 분들이 함께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주셔서 조금 더 힘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1주기 때는 해외에서 추모식이나 추모문화제 등이 22개 도시에서 진행됐는데 올해는 집계된 행사만 31개 도시에서 열린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각지에서 자발적인 추모 행사가 이뤄졌다. 주목할 점은 십대, 이십대 청소년들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청년들의 참여에서 희망을 봤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텐데, 문제는 언제냐는 것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데, 그럴수록 젊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는 게 더 힘이 됩니다. 언젠가 드러날 진실, 그 앞에서 함께 증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함께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면 저희는 충분합니다."진실이 밝혀졌는데 정작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진실의 의미는 묻힌다. 그것을 간과하면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가 준 뼈아픈 교훈을 얻지 못한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2주기가 지나고 나면 여러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를 지우기 위한 일들이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배가 인양되면 모든 게 끝났다고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는 2주기가 추모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함께 돌파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독려와 다짐의 자리가 되길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