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필요하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오늘 회사에 안 나와도 돼. 그 일만 끝내서 내일 보고해." "차라리 하루 10시간 일해서 회사에서 일 끝내고 나머지 시간을 마음 편하게 보내고 싶어요." 집에 와서도, 친구를 만나고 있을 때도 해야 하는 회사 일 걱정. 쉬고 있을 때도 울리는 카톡, 문자, 이메일.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우리의 휴식 시간. 집에 와서도 끝나지 않은, 회사에 있는 시간만 단축되는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임금과 연동되어 있는 노동시간 문제, 돈을 벌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는 현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의제가 만들어지고 노동조합과 여러 사회단체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막상 이를 가장 반대하는 것은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시간제 임금을 받는 대다수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감소가 결국 임금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은 생활 임금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기본급이 매우 낮거나 없는 임금구조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활임금이 유지되는 구조이다. 생활임금이 위협받는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인력확보가 먼저다,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는 노동자운전노동자는 이들의 건강이 시민의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므로 대부분 나라에서 법적으로 장시간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유럽, ILO, 일본 등 하루 9시간 이상 운전금지). 하지만 우리나라는 하루 운전시간을 제한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경기도 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7시간씩 운전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하루를 쉬고, 그 다음 날 또 하루 17시간을 운전한다.
만약 이 회사 차량이 30대라면 이런 방식의 교대를 하려면 최소 60명의 운전노동자가 필요하다(아무도 개인 경조사가 없어야 하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에서 50명 정도만 고용한다. 그러면 휴일 없이 3일 연속 17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10명의 노동자를, 실제로는 20명 정도의 노동자를 더 뽑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민의 세금으로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의 버스는 그렇게 하고 있다. 더 많은 운전기사를 채용해서 하루에 9시간씩만 운전한다. 경기도 버스를 타고 다니는 우리는 3일 연속 하루 3시간만 자며 17시간씩 운전하고 있는 운전노동자들의 버스를 타고 있다. 인력확보가 없는 노동시간단축은 우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아니, 노동시간 단축은 불가능하다.
노동시간단축은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는 여러 복잡한 고려 요인들이 얽혀 있어서 이것만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정책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임금구조, 퇴근 후 문화, 작업현장의 노동 구조, 우리 사회의 사회보장체계, 소비와 생산 그리고 고용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성장논리에 대한 반성과 대안, 교육과 복지의 사회적 책임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제 제기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연동되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정책을 만드는 곳들이 있다. 기본소득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정의당은 연봉 3천만 원 보장, 노동당은 월 30만원 기본소득 보장), 교육, 복지의 확장을 노동시간 단축과 연동하여 설명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사람들이다. 좀 더 나아가면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임금삭감도 없고(혹은 조금 벌어도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교대·야간 근무도 안 하고, 노동시간을 줄일 만큼 인력도 충분하고, 집에서는 진짜 푹 쉴 수 있고, 내 몸과 마음이 감당할 만큼의 일을 하는, 그러면서도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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