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양정고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양천구개표소에서 운영요원들이 투표지분류기 작동 등 개표사무를 연습해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선거의 숨은 변수는 바로 비례대표 투표였다. 21개나 되는 정당이 있었기에 투표지는 한 손에 잘 잡히지 않을만큼 길었다. 33.5cm로 그간 선거 중 최장 길이란다. 그 표들은 손에 쥐기가 쉽지 않았고, 바르게 정리하는 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비례대표 표를 잡는 것이 지겨워질 때마다 "무슨 이런 당이 있느냐"며 수많은 당들을 성토하곤 했다. 몇 가지 당들은 이름만 보고는 무슨 당인지 추측이 불가능해 사무원들끼리 무엇을 목표로 하는 당인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개표 과정은 꽤나 공정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20여 명이 넘는 개표참관인들은 개함부와 개표기분류부, 심사집계부를 오가며 면밀히 개표과정을 관찰했다. 우리 지역은 도중에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었고, 수치도 잘 맞는 듯했다. 딱 한 번 옆 개함부에서 한 표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모르고(쏟는 과정에서 표들이 바닥에 떨어지곤 한다) 넘겼다가 수를 맞춰서 다시 분류한 일이 있었긴 했지만. 이후 위원들은 개함부를 지나다니며 "바닥을 꼭 보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개표 끝, 간식과 함께 퇴근개표과정은 길었다. 개함부에 있는 사무원들은 허리와 어깨통증을 호소했고, 심사집계부에 있던 사무원들은 일일이 표들을 확인하느라 "눈이 빠질 것 같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자체적으로 한 번의 쉬는 시간과 표를 정리하고 다음 함이 뒤집히길 기다리는 잠깐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인구가 적은 동'의 함이 오기를 바라곤 했다. 하나 마치고 나면 새 함이 오기까지 잠깐 1분이라도 쉬니까. 마지막으로 전해진 투표함의 동네가 인구가 많은 동임이 밝혀지자, 모두들 "일복 터졌네"라며 웃음짓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일렬로 20~30개가 놓인 함들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내 손에 종이에 베인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을 즈음인 오후 11시가 지나자 개표는 마무리됐다. 인구가 많은 동은 새벽까지 작업이 이어진다고 하지만, 내 지역구는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가능한 듯했다. 사무원에게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작은 케이크가 간식으로 지급됐다.
케이크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제서야 제대로 된 개표 현황을 볼 수 있었다. 장담컨대 개표사무원 아르바이트의 가장 큰 단점은 개표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한데 사무원 알바를 하면서는 확인할 짬이 나지 않아 볼 수가 없다. 개표사무원 알바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지만, 또다시 할지는 모르겠다. 시급이 세긴 하지만, 궁금증을 참기도 쉽지 않고, 어깨도 아프다. 개표 참관이나 사무원 신청은 지역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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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표에 목숨 달렸다... 4.13 개표현장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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